Pure Dhamma 공부/PD 관련 포스트

2024년 3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4. 3. 31. 19:49

2024년 3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4/03/01(금)

 

빚 거래를 한다는 것은 업씨앗을 만든다는 것이고, 빚이 없어진다는 것은 업씨앗이 91대겁이 지난후에 자동적으로 없어지거나 업씨앗에 의한 과보를 받아 없어지거나 업씨앗에 의한 과보를 받으면서 열매(새로운 업씨앗 또는 바와, 즉 깜마 바와 또는 웁빳띠 바와)를 맺어 그 업씨앗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빚 거래 또는 업씨앗 형성은 좋은 업씨앗(채권)의 형성 또는 나쁜 업씨앗(채무)의 형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윤회를 계속되게 하는 모든 행위에 의한 씨앗의 개념이다.

모든 빚 거래는 무지/갈애에 의해 이루어져 업씨앗이 형성되는 것이며, 빚 거래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자가 (무지/갈애가 없어져) 끼리야행을 하며 더 이상 업씨앗을 형성하지 않는 아라한인데, 아라한도 그 전에 행한 빚 거래에 의한 과보는 반열반에 들기 전에는 받을 수 밖에 없다.

 

2024/03/02(토)

 

우리 일에 대해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앗따-누딧티(attānudiṭṭhi)라고 한다.

그 ‘앗따-누딧티(attānudiṭṭhi)로 다섯 무더기(오온)에 대한 갈망을 일으킨다. 그것은 이 세상 것들이 결실있고 가치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라고도 한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진리(아닛짜 본질)를 이해할 때, 앗따-누딧티(attānudiṭṭhi)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라는 그 잘못된 견해가 사라지고, 우리 마음은 엄청난 안도감(경감)을 느낄 것이다.

출처: 닙바-나에 이르는 방법(와하라까 테로 스님의 법문 일부)’ 중에서

 

2024/03/03(일)

 

아라한(Arahant)이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 또는 아라한 팔라 사마-빳띠(Arahant phala samāpatti) 상태에 들어 있지 않을 때, 그 아라한 성자의 찟따(citta)는 보통 사람이 ‘윈냐-나칸다(viññānkkhandha)’까지 이르러 끝나는 그 [오염 9단계]과정 중에서 마-나산(mānasan) 상태에만 이른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9

 

2024/03/04(월)

 

붓다 담마에서 ‘항상 깨어있으라’라는 말은 낮(일상 생활)이나 밤(꿈)이나 과보를 받을 때 ‘항상 올바른 아나빠나사띠를 하며 살라’는 말이다.

이는 ‘세간 정견(범부중생의 경우) 또는 출세간 정견(유학성자의 경우)으로 항상 삼마 사띠하라’는 말이며, ‘다섯가지 장애가 없이(눌려지거나 제거된 상태) 살라’는 말이다.

따라서, 다섯가지 문이 닫히고 제6문만 열려 골똘히 생각하기만 하더라도 ‘삼마 사띠하면서 살라’는 말이며, 꿈을 꾸더라도 삼마 사띠가 있으면 (오문이 작용하지 않고) 제6문만 작용하며 깨어 있는 것이다. 자-나(아나리야/아리야 자나)는 오문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로 다섯가지 장애가 없이 삼마 사띠하는 깨어 있는 상태다. 

 

2024/03/05(화)

 

어떤 사람들은 아주 좋은 말을 하고 선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나쁜 의도/마음가짐을 가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말을 잘하는 척 할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나쁜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말할 수도 있다[즉, 나쁜 생각의 말은 자신에게 나쁜 업이 될 뿐, 상대방에게 나쁜 업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임].

좋은 행동/말을 하는 움직임(동작)을 연습하는 것은 좋은 업 에너지(kammic energy)를 생성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ma-sankhara-abhisankhara 

 

2024/03/06(수)

 

업(깜마)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자와나 찟따에서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업씨앗)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빠-빠 깜마를 짓는다는 것은 사악처로 가게 하는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를 형성한다는 것이고,

뿐냐 깜마를 짓는다는 것은 선처로 가게 하는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를 형성한다는 것이며,

꾸살라 깜마를 짓는다는 것은 열반으로 가게 하는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2024/03/07(목)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업씨앗)는 동일한 요소로 분류되어 있지만 업(깜마)에 따른 그 질이 모두 다르다.

그것은 생명과학에서 다루는 (‘업에너지가 없는 루-빠’가 무수히 결합된 상태의) DNA처럼 그 질이 서로 무한히 다른 것과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DNA를 이루는 그 업에너지가 없는 루-빠는 개별적으로 약 1/4대겁(20겁)의 자연적 수명을 가지지만, 지위띤드리야 요소가 있는 그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는 개별적으로 (비상비비상처에 가게 하는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인 경우) 그 수명이 84,000겁이나 된다.

 

2024/03/08(금)

 

<육체결합 간답바와 육체분리 간답바 사이의 의사소통>

간답바가 빠사다 루빠를 통해 송/수신하는 형색/소리/냄새/맛/감촉 신호(숫닷-타까/부-따 및 마하 부-따 레벨)는 뇌가 눈/귀/코/혀/몸을 통해 송수신하는 형색/소리/냄새/맛/감촉 신호(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립자 이상의 다뚜 레벨)와는 다르다. 

따라서, 육체가 없는 간답바 사이에서는 대상에 대한 개념이 공유되면 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나, 육체가 없는 간답바(육체분리 간답바)와 육체에 결합된 간답바(육체결합 간답바) 사이에서는 육체분리 간답바는 육체결합 간답바의 송신 신호를 수신할 수 있으나 육체결합 간답바는 육체분리 간답바의 송신 신호를 수신할 수 없으므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참조 포스트: ‘각 유정체 사이의 의사소통에 대해’ ( https://cafe.naver.com/puredhamma/1858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2745353251 

 

댓글)

오늘 한두줄 메모장의 문제는 제가 퓨어담마를 접하기 전에 테라와다불교를 공부하면서 항상 의문시하며 풀리지 않았던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신통력을 지닌 이들이 어떻게 다른 여러 계의 여러 유정체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답바 개념과 그 숫닷-타까/부-따/마하부-따 레벨의 신호, 즉 소립자보다 훨씬 미세한 그 레벨의 신호(에 의한 산냐-)에 대해서 알지못하고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이며, 전통테라와다불교에서는 간답바 자체를 부정하므로 그 레벨의 루빠에 대한 이해는 전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전통테라와다의 가르침에서는 나마루빠 빠리쩨다 냐나가 생길 수 없다는 것과 같으며, 이것은 법문을 듣지 않고 선정 수행 또는 잘못된 위빠사나 수행만으로는 생길 수 없는 지혜인 것입니다.

2024.03.08. 09:09

 

2024/03/09(토)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도덕적 삶을 사는 것만으로는 영구적 행복을 얻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천상도 붓다 담마에 따르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붓다 담마에서는 세상 것에 대한 모든 갈망을 포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세상 것에 대한 모든 갈망을 포기하는 것’을 통해 열반을 구하는 마음 가짐(마음 성향)은 세간적 고귀한 팔정도(mundane Noble Eightfold Path)에 진전이 있을 때까지는 불가능하다. 31영역의 어떤 곳이라도 존재하는 것의 무익함(헛됨)을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이 어느 정도까지 정화되어야 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maha-chattarisaka-sutta-discou 

 

2024/03/10(일)

 

범부중생의 경우는 인간존재의 본질인 간답바의 깜마자 까야(찟따에 따라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찟따자 까야와 우뚜자 까야는 제외)는 최초에 재생연결되었을 때나 육체에 들어왔을 때나 갓난아기 때나 어린이 때나 어른일 때나 바뀐 것이 없다. 변화된 것은 제6문을 통해 연결되는 나마곳따와 업씨앗의 양과 이번에 매칭된 수정란과 관련된 육체(뇌 포함)일 뿐이다.

그러나 성자의 경우는 범부중생과는 달리 인간존재의 본질인 간답바의 질이 바뀌어, 기본적으로 사악처에서 벗어났으며 성자의 레벨에 따라 인간/천신계나 욕계나 31계 세상 전체에서도 추가적으로 벗어났다.

 

2024/03/11(월)

 

육체적 고통(괴로움)에 대해 인내하거나 단순한 상카-라 또는 뿐냐-비상카-라로 제거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로바/도사/모하로 아뿐냐-비상카-라를 행하여 제거하는 것은 현재의 정신적 괴로움을 증가시키거나 미래의 고통(괴로움)을 증가시키므로 더 큰 문제가 되는데, 이 잘못된 행위는 깊은 담마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인 업과 과보의 법칙을 모르거나 잊고 도덕적으로 눈먼 모하 상태이기 때문에 행해진다.

그 고통/괴로움은 자신의 과거 업행으로 인해 일어나는 과보인 줄 모르고, 그 원인을 외부 대상에서 찾고 돌리기 때문에 정의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또다른 미래의 고통(괴로움)이라는 과보를 불러일으키는 업행인줄 모르기 때문이다.

 

2024/03/12(화)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법구경 183)>

무슨 일을 해도 좋으나,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악처로 가게 하는 업씨앗을 형성하는 사견에 의한 탐/진/치의 불선행(빠빠 깜마를 형성하는 아꾸살라행)을 하지 않는 것이고, 

우선 해야 할 것은 선처로 가게 하는 업씨앗을 형성하는 세간 정견(업자성 정견이 기본)에 의한 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선행(뿐냐 깜마를 형성하는 꾸살라행)을 하여 마음을 일시적(또는 표면적)으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은 열반에 이르게 하는 업씨앗을 형성하는 출세간 정견(틸락카나가 기본)에 의한 출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선행(꾸살라 깜마를 형성하는 꾸살라행)을 하여 마음을 영구적(또는 근본적)으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붓다 담마)인 법구경 183을 좀 상세히(또는 좀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댓글)

본문의 글은 그동안 제가 전달한 붓다 담마의 핵심은 법구경 183을 이와 같이 이해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으며, 이것만 바르게 이해하고 항상 이 핵심을 잊지 말고 아라한에 이를 때까지 이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2024.3.12. 06:19

 

2024/03/13(수)

 

궁극적 자연법칙 또는 세상의 궁극적 진리는 적어도 마하부따/부따(숫닷-타까) 레벨의 실상(또는 메커니즘)을 볼 수 있는 청정한 마음이 판단하여 논리(추론)적 타당함과 실증적 증거에 정합성(일관성)이 있고 모순이 없어야 한다.

마하부따/부따(숫닷-타까) 레벨은 현대의 어떤 과학도구와 과학기술로도 볼 수 없는 ‘소립자 이전의 레벨’이므로 현대(물질)과학은 결코 궁극적 자연법칙 또는 세상의 궁극적 진리를 알아낼 수 없다.

숫닷-타까 레벨 이하(업씨앗/업에너지 등)의 실상은 완전히 청정한 마음(끼리야 마음)을 지닌 아라한만이 신통력으로 볼 수 있으며, 삼마삼붓다는 세상 모든 것을 보고 알 수 있는 일체지가 생기게 하는 무한한 공덕을 축적해야만 출현하는 특별한 아라한이다.

 

2024/03/14(목)

 

아닛짜, 둑카, 아낫따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는데, 

다섯가지 기능(사띠, 빤냐, 위리야, 사마디, 삿다) 중의 한가지가 지배적일 때 그 성향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수행에 따라 그것을 주축으로 하여 나머지를 개발해야 하며, 나머지를 개발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2024/03/15(금)

 

요-니소 마라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고 그래서 이 세상은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라는 3가지 특성을 가진다는 마음 성향을 지니는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manasikara-and-paticca-samuppa 

 

2024/03/16(토)

 

닙바-나에 이르는 것은 세상의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출세간 정견을 통해서 아꾸살라 행을 하지 않고 꾸살라 행을 할 때만 가능하다. 

이는 아닛짜 카얏테나, 둑카 바얏테나, 아낫따 아사라깟테나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출세간 정견으로 세상에 들러붙지 않는 것이다.

세간 정견으로 꾸살라 행을 하면 세상에 들러붙게 되어 있어, 선처에 태어나기는 하겠지만, 결코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닙바-나에 이를 수는 없다.

 

2024/03/17(일)

 

마음(찟따)을 89가지로 나눈 것은 마음을 고요히 하는 자-나(선정) 수행과 관계없이 네 단계(4쌍의 성자 단계)로  번뇌가 제거된 해탈에 이르는 마음을 포함하는 분류고,

마음(찟따)을 121가지로 나눈 것은 마음을 고요히 하는 5가지 자-나(선정) 수행에 따라 네 단계(4쌍의 성자 단계)로  번뇌가 제거된 해탈에 이르는 마음을 포함하는 분류다.

따라서, 자-나(선정) 수행과 관계없이 번뇌가 제거된 해탈에 이를 수도 있고, 자-나(선정) 수행을 하면서 번뇌가 제거된 해탈에 이를 수도 있다.

 

2024/03/18(월)

 

담마-(에너지 상태의 루빠)도 루빠다. 따라서, 세상에 들러붙어 윤회의 괴로움을 자초하는 것은 루빠에 들러붙는다는 것이다. 루빠에 들러붙어 루빠를 더 형성하면서 자신의 오취온을 더 형성하며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며 윤회의 괴로움을 좋은 것으로 알고 세상(또는 루빠)에 들러붙어 사는 것이 윤회다.

 

2024/03/19(화)

 

누군가가 '다른 종교를 비판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나온 말이다. 잘못된 전제가 어디에 있든, [그 잘못된 전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붓다 담마에서 비슷한 문제를 발견하면, 그 사안을 꺼내 논의해야 한다.

진정한 연민은 다른 사람들이 복잡한 우리 세상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괴로움을 없앨 수 있게 할 것이다. 물론, 세상의 본질에 대해 어떤 주어진(특정)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각 개인의 몫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tipitaka-the-uniqueness-of-bud 

 

2024/03/20(수)

 

정치를 잘 해야 한다.

무슨 정치를 우선 어떻게 잘 해야 하는가?

외부 대상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정치를 하더라도, 매순간 우선  자신의 내부 정치, 즉 자신의 마음에 대한 정치를 사성제 또는 팔정도(제4성제)에 따라 잘 해야 한다.

(‘사성제 또는 팔정도(제4성제)를 배우고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https://cafe.naver.com/puredhamma/3067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3387841105 참조.)

 

2024/03/21(목)

 

사건이 당신의 견해와 일치할 때, 즉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당신의 견해에 따라 일이 당신의 기대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즐거운 생각이 떠오른다. 당신은 당신이 찾고 있던 것을 찾았다. 즉,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고, 이로 인해 번뇌(vexation, 불만족)가 해소되었다. 불행하게도 당신의 욕구는 항상 다시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번뇌(불만족)은 항상 다시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s://unconditionalhappiness.org/the-happiness-paradox/ 

 

2024/03/22(금)

 

미래의 탄생은 자신의 가띠(gati) 때문이다. 미래의 탄생은 자신의 가띠(gati)에 의해 결정된다는 깨달음과, 자신의 가띠(gati)에 따른 바와(bhava)와 자-띠(jāti)를 이해하는 능력을 ‘나-마루-빠 빠릿쩨다(빠릿쩨-다) 냐-나(nāmarūpa paricceda(pariccēda) ñāna)’라고 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루-빠(rūpa)는 나마(nama)에 따르는 것(실제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몸은 자신의 생각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gati-to-bhava-to-jati-ours-to 

 

2024/03/23(토)

 

욕계의 꾸살라 찟따 및 끼리야 찟따 각 8가지 중의 각 4가지에 포함되어 분류/정리된 빤냐- 심소는, 범부중생일 경우에는 세간 정견에 따른 세간적 빤냐-(또는 세간적 아모-하)를 의미하고, 유학성자와 아라한일 경우에는 출세간 정견에 따른 출세간적 빤냐-(또는 출세간적 아모-하)를 의미한다.

여기서, 범부 중생과 유학성자에게는 빤냐- 심소가 포함되었든 포함되지 않았든 8가지 꾸살라 찟따는 9단계까지 순간 오염되어 업씨앗을 형성하는 윈냐-나고, 아라한에게는 빤냐- 심소가 포함되었든 포함되지 않았든 끼리야 찟따는 3단계까지만 순간 오염되어 업씨앗을 형성하지 않는 찟따다. 

즉, 8가지 꾸살라 찟따와 끼리야 찟따는 심소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오염으로 구분되므로, 순간 오염을 가르치지 않는 전통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간답바와 마찬가지로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점(또는 의문점)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2024/03/24(일)

 

선정(자-나)에서 위딱까/위짜-라가 없다는 것은 나쁜(불건전한) 위딱까/위짜-라가 없다(아위딱까/아위짜-라)는 것이며, 좋은(건전한) 위딱까/위짜-라인 사위딱까/사위짜-라는 모든 선정(자-나)에 함께 한다.

제1선정에서 위딱까/위짜-라가 있다는 것은 좋은 위딱까/위짜-라, 즉 사위딱까/사위짜-라가 있지만, 나쁜 위딱까/위짜라가 간혹 일어난다는 것이다.

제2선정에서  위딱까/위짜-라가 없다는 것은 나쁜 위딱까/위짜-라가 없고(아위딱까/아위짜-라), 좋은 위따까/위짜-라, 즉 사위딱까/사위짜-라만 있다는 것이다.

참조: https://puredhamma.quv.kr/124 

 

2024/03/25(월)

 

붓다께서는 세상의 외부 대상을 조사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가르치셨다. 그러한 조사는 결코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진실/진리'로 이어질 수 없다. 붓다께서는 오직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붓다 담마의 기초/기본)의 모든 용어는 정신적 실체다.

출처: https://puredhamma.kr/sanna-vipallasa-distorted-perc

 

2024/03/26(화)

 

붓다 담마에서 들러붙음(또는 집착)은 그 대상이 세상(오온/12처/18계)일 경우에만 사용가능한 말로서, 빠알리어로는 땅하-(또는 우빠-다-나)며, 열반(닙바-나)에 대해서는 사용할 수 없는 용어다.

‘들러붙음 없음’(또는 집착 없음)이 열반이며, ‘땅하- 없음’(또는 우빠-다-나 없음)이 열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열반에도 들러붙지(또는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하게 된다.

 

2024/03/27(수)

 

붓다 담마에서 ‘가치없다’, ‘실속없다’, ‘의미없다’, ‘결실없다’ 등의 말은 열반을 기준으로 하여 볼 때, 세상/세상것이 ‘궁극적/장기적으로 가치/실속/의미/결실 없다’는 것이지, 세상/세상것에서 열반에 이르기 위한 중간 단계로서 선처에 태어나거나 열반에 이르기 위한 행(뿐냐비 상카-라, 꾸살라물라 상카-라) 또는 깜마(뿐냐 깜마, 꾸살라 깜마)나, 열반에 이르기 위한 뗏목으로 필수적인 사성제/띨락카나/연기의 가르침 등이 모두 ‘가치/실속/의미/결실 없다’는 것이 아니다.

 

2024/03/28(목)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상/세상것에 속하지만 중간 단계 또는 조건/원인으로서 단계적으로 필요한 세상/세상것이 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이 가치/실속/의미/결실 없다’는 견해/생각/말/행위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세간 팔정도가 확립되지 못한 자들의 팔사도에 속하는 견해생각/말/행위며 결코 열반에 이를 수 없는 견해/생각/말/행위다.

 

2024/03/29(금)

 

오취온(빤쭈빠-다-낙칸다)만이 둑카가 아니라 오온(빤짝칸다)도 둑카다.

욕계에서 육체를 가진 아라한에게 오취온이 더 이상 생기지 않더라도 육체가 죽어 반열반에 이르기 전까지 정신적 둑카는 생기지 않지만, 오온으로 인해 (육체적) 둑카가 생기므로 오온도 둑카인 것이다. 그러나, 육체를 가진 우리 인간들은 오취온만 제거하도록 노력하면 된다. 

우리와 같은 육체가 없는 간답바/천신/범천들은 오취온이 완전히 제거되자마자(즉, 아라한에 이르자마자) 바로 반열반에 들게 되므로, 오취온이 둑카라고 해도 문제는 없으나, 육체를 가진 인간 아라한의 오온으로 인한 둑카까지 고려하면 ‘오취온은 오온 형성의 기원/원인, 즉 둑카의 기원/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온은 세상이므로 세상은 둑카인데, 오취온만이 둑카라고 말하면 오온은 둑카가 아니므로 세상은 둑카가 아니라는 말이 될 수 있으므로 제1성제와 모순될 수 있으며, 세상에서 열반을 구하는 잘못된 길이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세상의 특성인 ‘아닛짜/둑카/아낫따’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위 글은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meaning-of-dukkha-in-buddha-dhamma/#post-48727 을 보고 ‘둑카=오취온’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적은 것이며, 이 문제는 https://cafe.naver.com/puredhamma/2305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3041978786 에서 다룬 것임.] 

 

2024/03/30(토)

 

틸락카나(Tilakkhana) (아닛짜_anicca, 둑카_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해 가장 잘못 이해되는 측면은 둑카(dukkha)가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괴로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명상 프로그램은 수행기간 중에 육체적 불편함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둑카(dukkha) 본질(특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kr/dukkha-in-tilakkhana-is-a-char 

 

2024/03/31(일)

 

오염된 마음은 세상에 들러붙는 마음이다. 

세상에 들러붙는 마음은 루빠를 좋아하고 루빠를 즐기며 루빠에 들러붙으며 루빠를 형성하는 마음이다.

루빠를 형성하는 마음은 업씨앗을 형성하는 마음이다.

루빠를 형성하지 않고 업씨앗을 형성하지 않는 마음이 아라한의 청정한 마음이다.

아라한의 청정한 마음만이 루빠에 들러붙지 않고 완전한 열반(반열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