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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4. 1. 31. 07:35

2024년 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4/01/01(월)

 

문제는 그 웨다나-(vedanā)가 진짜(실제)며, 대부분의 경우 재탄생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결국),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가 아니라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라는 것이다.

모든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려면 반드시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의 일어남이 지속되는 것, 즉 재탄생 과정을 끝내야 한다. 31영역의 어디에서도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를 가지고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출처: https://puredhamma.kr/yamaka-sutta-arahanthood-is-no 

 

2024/01/02(화)

 

뿌툿자나(범부 인간)는 ‘삭까-야’, 즉 ‘빤짜 우빠-다-낙칸다’에 들러붙는다.

빤짝칸다가 우선 일어나고, 그 다음에 마음이 그것에 들러붙는 것이 아니다. 감각 입력은 ‘왜곡된 산냐-’와 함께 시작되고 마음은 (상요자나에만 기반하여) 그것에 자동적으로 들러붙기 때문에, 뿌툿자나는 항상 시작부터 ‘빤짜 우빠-다-낙칸다’다.

(A puthujjana willingly attaches to “sakkāya” or “pañca upādānakkhandha.”

It is NOT that pañcakkhandha arises first, and then the mind attaches to it. Since a sensory event starts with the “distorted saññā” and the mind automatically attaches to it (based only on saṁyojana), it is always a “pañca upādānakkhandha” from the beginning.) 

출처: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posts-related-to-distorted-sanna/#post-47402 의  #3

 

댓글)

오늘 한두줄 메모장은 모든 유정체는 왜 ‘본래 부처’가 아니고 ‘본래 중생’인지를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감춰진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춰진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수행을 통해 상요자나를 제거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순수한 마음이 드러나서 완전히 깨달은 자(아라한 또는 붓다)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2024.01.02. 05:15

 

2024/01/03(수)

 

붓다의 세계관을 듣지/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가능한 한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를 원한다.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가치있거나 결실있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어떤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다. 고통스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에 피난처를 구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는 그 마음성향(사고방식)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보통 사람(뿌툿자나)의 목표는 좋은 일자리를 얻거나 사업을 하여 감각적 즐거움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etam-mama-esohamasmi-eso-me-at 

 

2024/01/04(목)

 

[세상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람들이 감각적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은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모색된다.

감각적 즐거움을 구하는 것이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 견해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다.

그 모델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바로 이 마음성향(사고방식)이 수천 년 동안 대대로 우세한 이유다. 오직 부처님만이 감각적 즐거움은 지속적인 행복을 주지 못하는 이유, 즉 삭까-야 딧티가 잘못된 견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kr/etam-mama-esohamasmi-eso-me-at 

 

2024/01/05(금)

 

사람들은 자신이 닛짜(nicca)와 수카(sukha)라고 인식하는 것에 들러붙게 된다. 닛짜(Nicca)는 우리가 그것들을 원하거나 좋아하는 식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수카(sukha)는 우리가 그것들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 사람들은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 또는 앗따-(attā)로 여긴다. 그 들러붙음은 매우 강한 것에서부터 덜 강한 것까지 다양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몸과 정신 특질(자기 자신의 몸에 관한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은 가장 강한 ‘앗따- 감각(sense of attā)’을 준다. 

출처: https://puredhamma.kr/sakkaya-ditthi-in-terms-of-att 

 

2024/01/06(토)

 

자신의 몸에 관한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는 가장 강한 ‘앗따- 감각(sense of attā)’ 다음으로, 자신의 배우자, 자기 아이, 자기 집, 자기 자동차, 등과, 자기 친척과 자기 친구 등이 [덜 강한 ‘앗따- 감각’으로] 온다.

그러므로, 제거하기가 가장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앗따- 감각(sense of attā)’이다.

그것은 의지력으로 제거될 수 없으며,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을 이해하는 것으로만 제거가 가능하다.

출처: https://puredhamma.kr/sakkaya-ditthi-in-terms-of-att 

 

2024/01/07(일)

 

실생활에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소-(salāyatana paccayā phassō)로 시작하고, ‘팟사 빳짜야- 웨-다나-, 웨-다나- 빳짜야- 땅하-(phassa paccayā vēdanā, vēdanā paccayā taṇhā)’로 진행된다.

출처: https://puredhamma.kr/paticca-samuppada-a-self-exist

 

2024/01/08(월)

 

<세간 수행과 출세간 수행 및 그 수행방법의 요지>

세간 수행에서는 깜마/위빠-까를 숙고(세간 정견)하면서 선처에 이르도록 다양한 식으로 수행하면 된다.

그러나, 아닛짜/둑카/아낫따를 숙고(출세간 정견)하면서 출세간 수행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붓다 담마의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이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나는 것이 지배적인 것이 되고 종국에는 아라한(또는 반열반)에 이르는 때가 있게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목표다.

출처: https://cafe.naver.com/puredhamma/2824 댓글의 답글을 편집

 

2024/01/09(화)

 

10가지 유형의 모든 깜마(kamma)에 대한 업 에너지(kammic energy)는 마음에서 생성된다. 따라서, 마음은 모든 10가지 유형의 깜마와 관련된 업 에너지를 생성한다. 이 결정적인(매우 중요한) 점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ma-sankhara-abhisankhara

 

2024/01/10(수)

 

다양한 유형의 쩨-따시까(cētasika)를 사용하여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 또는 깜마 비-자(kamma bīja)를 만드는 것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 있는 쩨-따나-(cētanā)다. 그런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 또는 깜마 비-자(kamma bīja)는 담마-(dhammā)의 일부분이다.

어떤 담마-(dhammā)는 단지 메모리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ma-sankhara-abhisankhara

 

2024/01/11(목)

 

마음 자리(hadaya vatthu, 하다야 왓투)는 생각이 일어나는 곳이다.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 정신적 몸 또는 간답바)의 일부다.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뇌와 지속적으로 접촉한다.

즉, 마음은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고, 뇌는 그 명령을 실행한다. 비유하자면, 비행기가 비행하는 방식과 같다. 조종사는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고, 내장 컴퓨터는 그 명령을 실행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ma-sankhara-abhisankhara

 

2024/01/12(금)

 

특정 아-람마나(ārammana)에 매이게 되면, 그 아-람마나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 정신 요소(쩨-따시까, cētasika)를 수반한다. 그것은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더 깊이(위딱까, vitakka), 그리고 자세히(vicāra, 위짜-라) 조사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vaci-sankhara-sankappa-and-v

 

2024/01/13(토)

 

“아-따-삐-(Ātāpī), 삼빠자-노(sampajāno), 사띠마-(satimā), 및 위네이야 로께 아빗자-도마낫산(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n)”은 각각 “위리야 인드리야(viriya indriya), 빤냐- 인드리야(paññā indriya), 사띠 인드리야(sati indriya), 및 사마-디 인드리야(samādhi indriya)”다.

출처: https://puredhamma.kr/satipatthana-sutta-structure 

 

2024/01/14(일)

 

당신이 선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를 원하자마자 당신은 실망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행복은 전적으로 그들의 행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s://unconditionalhappiness.org/the-happiness-paradox/ 

 

2024/01/15(월)

 

요-니소 마라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고 그래서 이 세상은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라는 3가지 특성을 가진다는 마음 성향을 지니는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manasikara-and-paticca-samuppa

 

2024/01/16(화)

 

(니로-다 사마-빳띠 외에) 다른 유형의 사마-빳띠(samāpatti)에서는 마노-드와-라 찟따 위티(manōdvāra citta vithi)가 계속 진행한다. 바왕가(bhavanga) 상태에 떨어지지도 않고, 빤짜드와-라 찟따 위티(pancadvāra citta vithi)로 외부 대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 자는 보거나 듣는 등[의 인식]을 할 수 없다. 보통 사마-빳띠(samāpatti)는 결국 저절로 끊어지거나, (그것에 숙달되면) 사마-빳띠(samāpatti)에 머무르는 시간을 미리 정할 수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9

 

2024/01/17(수)

 

세상은 윈냐-나에 의한 마술쇼다.

마술쇼인 줄 모르고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가 범부 중생이다.

마술쇼인 줄 알고 열반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가 유학성자다.

마술쇼인 줄 알고 열반의 행복을 추구하는 수행이 완성된 자가 무학성자(아라한)며,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해 마친 자다.  

 

2024/01/18(목)

 

견해와 생각에서 말과 행동이 나오고 업행을 한다.

올바른 견해를 중심으로 올바른 마음챙김과 올바른 노력으로,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을 하면서 올바르게 살아감으로써, 올바른 사마디에 이르러, 아라한 단계에서 올바른 지혜로 올바르게 해탈한다.

이것이 팔정도와 10가지 요소의 길이며, 여기서 올바르다는 것은 삼마, 즉 ‘산(탐진치)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4/01/19(금)

 

재탄생 과정에 머무르는 자는 ‘찬다 라-가(chanda rāga)’로 ‘세상의(세속적) 즐거움’을 기대한다. ‘라-가(rāga)’라는 낱말은 ‘윤회 여정에서 배회하는 것’을 암시하는 ‘배회’를 의미한다.

닙바-나(Nibbāna)를 얻고자 하는 바람(욕구)도 찬다(chanda)다. 그것은 찬다 잇디빠-다(chanda iddhipāda)다. 그 두가지 바람(욕구)/기대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출처: ‘닙바-나에 이르는 방법(와하라까 테로 스님의 법문 일부)’ 중에서

 

2024/01/20(토)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세상 것들을 원할 때 찬다 라-가(chanda rāga)를 가진다. 그 바람(욕구)은 아윗자-(avijjā)로 인해 세상 것들에 들러붙음(땅하, taṇhā)으로부터 생긴다. 아윗자-(avijjā)는 그것들의 결실없음과 그 속에 숨겨진 위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의(세속적) 욕구를 가지는 것의 위험을 지혜로 볼(알) 수 있을 때, 닙바-나(Nibbāna)를 원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찬다 잇디빠-다_chanda iddhipāda’를  기를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닙바-나에 이르는 방법(와하라까 테로 스님의 법문 일부)’ 중에서

 

2024/01/21(일)

 

우리가 얻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얻는 것은 마음에 만들어진 원인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도 동물로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폭행(강간)을 저지르면 그 마음 가짐(마음 성향)은 동물의 마음 가짐과 일치한다. 따라서 동물로 태어나는(재생연결되는) 결과도 가능하다.

출처: ‘닙바-나에 이르는 방법(와하라까 테로 스님의 법문 일부)’ 중에서

 

2024/01/22(월)

 

도덕적 행위가 오계 또는 팔계에 따르기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간주해서는 안된다.

도덕적 행위는 부도덕한 행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 나쁜 결과는 아빠-야-(apāyā, 사악처)로 나쁜 재탄생이 일어나는 것을 포함한다.

출처: ‘닙바-나에 이르는 방법(와하라까 테로 스님의 법문 일부)’ 중에서

 

2024/01/23(화)

 

<세상과 열반의 아비담마적 정의>

세상(괴로움/윤회)는 세가지 궁극 요소인 ‘찟따/쩨따시까/루빠’로 구성되는 어떤 개체(유정체 또는 마노마야 까야)가 사악처/인간/천신/범천 상태로 연기하는 생멸 상태다.

열반(괴로움없음/윤회없음)은 사악처/인간/천신/범천 상태로 연기하지 않는 불생불멸 상태, 즉 한가지 궁극 요소인 ‘닙바-나’의 닙바-나 상태다.

 

2024/01/24(수)

 

<세상과 유여열반과 무여열반>

세상은 삭까야 딧티(유신견, 즉 오취온의 견해)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오취온이 형성되는 상태, 즉 마노마야 까야를 통해 업씨앗이 형성되는 상태다.

유여열반은 삭까야 딧티(유신견, 즉 오취온의 견해)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오취온이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 상태, 즉 마노마야 까야를 통해 업씨앗이 형성되지 않는 상태다.

무여열반은 유여열반 중에 있는 어떤 개체(유정체)가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 상태(마노마야 까야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더 이상 새로이 형성되지 않는 상태)다.

 

2024/01/25(목)

 

아나-가-미(아나함) 단계에서 산냐- 위빨라사가 제거된다는 것은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 위빨라사가 제거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루빠 로까의 루빠 산냐- 위빨라사나 아루빠 로까의 아루빠 산냐- 위빨라사까지 제거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024/01/26(금)

 

왜곡된 산냐-에 의한 오염 단계에서, 아라한의 바힛다 까야는 순간오염  9단계의 마나산 단계까지만 오염된 것이며, 범부중생과 유학성자의 바힛다 까야는 순간오염 9단계의 윈냐-나 단계까지 오염된 것이므로, 서로 다르다.

따라서, 바힛다 윈냐-나는 범부중생과 유학성자의 바힛다 까야만을 의미한다.

 

2024/01/27(토)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의 또 다른 말은 빤자 니와라나(panca nivarana, 5가지 장애)다. 그 5가지 장애가 마음을 덮는다. 그 5가지 장애로 인해 마음이 가려질(덮여질) 때,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행하기가 쉽다.

출처: 닙바-나에 이르는 방법(와하라까 테로 스님의 법문 일부)’ 중에서

 

2024/01/28(일)

 

도덕적 행위를 하는 사람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하지 않는다. 그 마음에는 5가지 장애가 없다. 그 다음 그 사람이 올바른 담마(Dhamma)를 접하면, 담마를 이해하고 빤냐(paññā, 지혜)가 길러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5가지 장애를 제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들은 적어도 그 때에는 억눌려졌다. 그것을 따단가 빠하-나(tadaṅga pahāna)라고 한다. 일시적인 사마타(samatha), 또는 따단가 사마타(tadaṅga samatha) 상태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핵심 개념을 파악하고 빤냐-(paññā)를 기르기에는 충분하다.

출처: ‘닙바-나에 이르는 방법(와하라까 테로 스님의 법문 일부)’ 중에서

 

2024/01/29(월)

 

세상(윤회)의 위험함을 모르고 세상이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견해에서는 윤회 둑카의 근본적 소멸(열반)은 있을 수 없다.

즉, 세상의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가 얼마나 잘 이해되고 마음깊이 새겨지며 앗사다-아디나와-닛사라나로 이어지는 사고와 생활이 얼마나 깊이 실천되는가에 따라 도과의 각 레벨이 달성된다.

 

2024/01/30(화)

 

진정한 연민은 다른 사람들이 복잡한 우리 세상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괴로움을 없앨 수 있게 할 것이다. 물론, 세상의 본질에 대해 어떤 주어진(특정) 설명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각 개인의 몫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tipitaka-the-uniqueness-of-bud 

 

2024/01/31(수)

 

설령, 아비담마(Abhidhamma) 이론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먼저 사성제(The Four Noble Truths)를 이해해야 합니다(‘빠띳짜 사뭅빠-다_Paṭicca Samuppāda’, 또는 ‘아닛짜_anicca’, ‘둑카_dukkha’, ‘아낫따_anatta’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

아비담마(Abhidhamma)는 오직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에만 상황을 깊은 레벨로 분석하는 것을 원활(용이)하게 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abhidhamma-pitaka-deeper-ana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