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3/12/01(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 명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웰빙(만족/행복) 상태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호흡 명상’이라는 잘못된 실천 수행을 포기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그 완화(경감) 상태는 일시적일 뿐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is-anapanasati-breath-meditati
2023/12/02(토)
<분신(자살)과 들러붙음/업행/업>
분신(자살)은 범부 중생과 유학성자의 경우에 모두 세상에 대한 들러붙음에 따라 나타나는 행위이며, 붓다의 참된 제자(유학성자)는 분신(자살)하지도 않겠지만,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아라한이 아닌 경우에는 아무리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도 자살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분신(자살)도 자신의 육체를 해치는 살생에 해당하는 행위며, 아라한이 아닌 경우에는 모두 윤회를 지속시키는 업행(아비상카라에 의한 행)이다.
PS)
범부 중생이 참회로 하는 분신(뿐냐 깜마 또는 아꾸살라 깜마)과, 후회로 하는 분신(아꾸살라 깜마 또는 빠빠 깜마)과, 성냄으로 하는 분신(빠빠 깜마 또는 아꾸살라 깜마)은 모두 세상에 대한 그 들러붙음의 정도가 다르며, 그 업의 유형과 업력의 세기도 다르다.
하지만, 참회로 행하는 분신(자살)이라고 하더라도 범부 중생은 참된 붓다 담마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하는 업(꾸살라물라 상카라에 의한 꾸살라 깜마)이 아니다. 물론, 참된 붓다 담마를 이해한 유학 성자도 그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뿐냐 깜마 또는 아꾸살라 깜마를 야기하는 행을 할 수는 있다.
2023/12/03(일)
사성제(네 가지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면 재탄생 과정의 위험을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와 함께, '삶을 즐기는 것'에서 '열반을 추구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적 즐거움에 있는 숨겨진 위험을 ‘보아야(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들러붙는 경향’이 감소한다. 그럴 때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로 ‘전환’되어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진다.
출처: https://puredhamma.kr/sankhara-what-it-really-means
2023/12/04(월)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 있으면서도 육체적 병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탐진치의 마음이다.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라/마라나/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사빠-야-사’를 겪으며 괴로움/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아닛짜/둑카/아낫따의 인식과 함께 열반에 다가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출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마음이다.
육체가 없는 세상에 태어나고자 바라는 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마음은 사실은 선처에 태어나고자 하는 약한 탐진치, 즉 라가/빠띠가/아윗자의 마음이며, 붓다께서 권장하신 것이 아니다. 자-나도 닙바-나에 이르는 아리야 자-나를 권장하셨지,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는 아나리야 자-나를 권장하신 것이 아니다.
2023/12/05(화)
정신적 몸이 육체적 괴로운 느낌(둑카 웨다나)을 느끼지 않으려면, 육체가 없거나 감촉을 느끼게 하는 까-야 빠사다 루빠가 없어야 한다. 육체를 통한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한 결과로 가지게 된 육체(인간과 동물)와 까-야 빠사다 루빠(욕계 유정체)가 있는 상태로 오문인식과정이 일어나지 않는 자-나에 들거나 마취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육체적 괴로운 느낌에 대한 일시적 해결책일 뿐이다. 이에 대한 영구적 해결이 아라한의 무여열반(반열반)이다.
2023/12/06(수)
정신적 몸(마노마야 까야 또는 간답바)이 세상 또는 세상의 어떤 대상에 대한 정신적 괴로운 느낌(소마낫사 웨다나)을 느끼지 않으려면, 그 대상에 대해 들러붙는 가띠(산가띠)가 영구적으로 없어야 한다. 산가띠에 따라 들러붙는 마음이 일어나는 한, 아무리 감각적 욕망(로바 또는 까-마 라-가)이나 아나리야 자-나의 욕망(루빠 라-가 또는 아루빠 라-가)이 충족되어도 일시적 해결책일 뿐이다. 이에 대한 영구적 해결이 아라한의 유여열반이다.
2023/12/07(목)
<자-나와 자-나 사마빳띠>
(특히 많은 연습을 하지 않고) 사람이 자-나(jhāna)에 들어갈 때, 그 마음은 자-나 찟따의 흐름에 연속하여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자-나 찟따 위티(jhānā citta vithi)와 까마 로까(kama loka, 욕계)에 속하는 빤짜드와-라 찟따 위티(pancadvāra citta vithi, 오문인식과정)가 교대로 진행되는 상태다. 따라서, 요기(수행자)는 자-나 상태에 있는 동안에 보고 들을 수 있다.
~
연습을 하면, 몇 분 동안 연속적으로 자-나 찟따 위티(jhānā citta vithi)를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수행자가 다섯 가지 육체 감각을 통한 어떤 감각 입력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수행자는 보고 듣고 등을 할 수 없다. 그 시간 동안, 수행자는 자-나 사마-빳띠(jhānā samāpatti)에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9
2023/12/08(금)
잇차-(icchā)(좋아함/바람) 때문에, 우리는 들러붙게 된다(taṇhā, 땅하-). 재탄생된 존재로 이끄는 것은 이 들러붙음(taṇhā, 땅하-)이다. 그 땅하-(taṇhā)는 바로 이 세상의 즐거운 것들에 대한 땅하-(까-마 땅하-, kāma taṇhā), (재탄생을 믿는 자들이) 계속 존재하고자 하는 땅하-(즉, 바와 땅하-, bhava taṇhā), (재탄생을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생이 지속되는 동안 즐거움을 최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땅하-(즉, 위바와 땅하-, vibhava taṇhā)다.
출처: https://puredhamma.kr/iccha-tanha-kama-root-causes-o
2023/12/09(토)
모든 아라한(Arahant)들이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 도달하는 것은 닙바-나(Nibbāna)를 생각 대상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를 통해 이행된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9
2023/12/10(일)
‘붓다 담마를 배우고 실천한다는 것은 법구경 183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다.
예로서, 법구경 183의 첫째 행과 둘째 행은 와찌/까야 상카-라에 대한 것이고 셋째 행은 마노 상카-라에 대한 것으로 이해하여, 아꾸살라물라 연기 및 꾸살라물라 연기와 찟따 위티(mindstream)까지 모두 포함하여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붓다 담마의 이해와 실천을 통해 찟따 위티에서 범부 중생과 유학성자의 자와나 찟따가 무학성자(아라한)의 끼리야 찟따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법구경 183에 대한 올바른 번역은 https://puredhamma.kr/sabba-papassa-akaranam 참조)
2023/12/11(월)
아나리야 요-기(anāriya yōgi, 세간 수행자)는 네-와 산냐- 나- 산냐- (nēva saññā nā saññā) 상태에 도달할 수 있지만, ‘산냐-웨다이따 니로-다 사마-빳띠(saññāvedayita nirōdha samāpatti)’로 이행할 수 없다.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를 기른 아라한(Arahant)만이 ‘산냐-웨다이따 니로-다 사마-빳띠(saññāvedayita nirōdha samāpatti)’에 도달할 수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9
2023/12/12(화)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서는 찟따 위티(citta vithi, 인식과정)가 진행되지 않고, 바왕가(bhavanga) 상태도 없다. 몸의 생명은 업 에너지로 유지된다. 웨다나(vedana), 산냐(saññā) 등이 없다.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 있을 수 있는 최대 기간은 7일이다. 아라한(Arahant)은 니로-다 사마-빳띠에 들어가기 전에 그 상태에 얼마나 오래(7일까지) 머무를 지에 대해 결의할 수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9
2023/12/13(수)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상태는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와 꼭 같다. 유일한 차이점은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들어가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라한(Arahant)은 ‘닙바나의 지복’을 누리고 ‘짐이 되는 세상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능할 때마다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9
2023/12/14(목)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31영역 세상의 모든 것은 상까따(sankata) 또는 상카라(sankhara)다. 절대적으로 말할 때 모든 것은 ‘담마-(dhammā)’로 나타내며, ‘담마-(dhammā)’에는 상까따(sankata) 또는 상카라(sankhara)와 나마 곳따(nama gotta)가 포함된다. 나마 곳따(nama gotta)는 정신계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모든 사건(경과)의 기록이며, 이것만이 세상(31영역)에서 진정으로 영원한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32
2023/12/15(금)
붓다 담마에서는 틸락카나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세상/세상것은 의미/가치가 없다’고 한다.
붓다 담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이와 연관된 연기와 통합된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므로 아무런 어떤 노력의 행도 하지 말고 되는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쉽게 오해한다. 이런 오해로는 의미없고 가치없는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재탄생(윤회)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불선뿌리(아꾸살라물라) 연기만 굴러갈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의미/가치있는 것은 이런 의미/가치없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즉 열반에 이르는 노력), 즉 태어나지 않음이 확실하게 되는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선뿌리(꾸살라물라) 연기가 구르도록 노력하는 것이며, 이것만이 세상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노력(성스런 팔정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23/12/16(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상관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지금이든 나중에든 긴장, 불만, 비참함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유형의 사고, 즉 어수선함입니다. ‘올바른’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 즉 다름 아닌 지혜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건지어지지 않은 행복’으로 직결된다.
출처: https://unconditionalhappiness.org/the-biggest-obstacle-to-happiness/
2023/12/17(일)
(당신이 해야 하는) 그것들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세상/세상것을 통해)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것들을 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들을 할 때, 당신은 항상 어떤 결과를 기대한다. 결과가 당신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으면, 당신은 불만족스럽고 불행한 것이다. 당신은 항상 더 큰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정한 결과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사실 당신의 기본 마음 상태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불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https://unconditionalhappiness.org/everything-in-the-name-of-happiness/
2023/12/18(월)
당신이 외부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려놓는(let go)’ 법을 알고 있다고 믿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당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당신을 어떻게 대하는 지에 의해 당신이 영향을 받는다면, 당신의 이해가 아직 심오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더 간단히 말하면, 당신의 이해나 지혜가 깊어질 여지가 있다. 따라서 지혜를 확장하면, 우리의 '모름' 상태, 즉 ‘무지’ 상태가 줄어든다. 여기서 ‘무지’란 지혜가 부족한 것을 가리킨다.
출처: https://unconditionalhappiness.org/the-biggest-obstacle-to-happiness/
2023/12/19(화)
복잡함은 무지가 이 무지 너머를 보는 능력을 방해한다는 사실에 있다. 달리 말하면, 무지는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르침의 길을 따라 나아감에 관계없이, 항상 마음을 열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출처: https://unconditionalhappiness.org/the-biggest-obstacle-to-happiness/
2023/12/20(수)
무지가 감소하고 지혜가 증가하면, 행복에 대한 더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그러면 “나는 안다”라는 것이 실제로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사실, 그 사람은 실제로 남아 있는 무지를 훨씬 더 많이 알게 된다.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의미가 있다. 무지가 약해지면 에고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출처: https://unconditionalhappiness.org/the-biggest-obstacle-to-happiness/
2023/12/21(목)
세상/세상것에서 느낌을 통한 행복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세상/세상것을 목적 또는 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 일반적인 가르침에 따른 행위다. 여기에는 세상/세상것에 닛짜/수카/앗따 특성이 있다고 봄에 따라 세상/세상것에 기대/들러붙음이 있다.
2023/12/22(금)
열반이라는 궁극적 행복(느낌과 관계없이 갈애가 없는 행복)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세상/세상것을 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붓다 담마에 따른 행위며, 이 붓다 담마도 세상/세상것이고 행위의 궁극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열반에 이르기 위해 타고 가야할 뗏목일 뿐이다. 여기에는 세상/세상것에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이 있다고 봄에 따라 세상/세상것에 기대/들러붙음이 없다.
2023/12/23(토)
일부 사람들은 닙바-나(Nibbāna)와 함께 ‘그들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몹시 두려워한다. 그들은 “내가 절멸/제거되는 것입니까?” 라고 묻는다. 그 질문은 ‘영구적으로 지속하는 영혼/아-트만’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묻는 것이다.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가진 자들만 그런 질문을 한다.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제거되면, 재탄생 과정을 넘어가는 나(me, I)가 없다는 것을 안다. 재탄생은 원인과 조건이 존재함에 따라 일어난다.
(어쨌든, 영구적으로 지속하는 나(I, me)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왜 걱정하는가? 그 경우라면(영구적으로 지속하는 나가 있다면) 영구적인 것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절멸되거나 제거되는 영구적인 것은 없다! 아눌로바(Anuloma) PS는 존재로 이어지고, 빠띨로마(Paṭiloma) PS는 그 과정의 그침으로 이어진다.)
출처: https://puredhamma.kr/dhamma-different-meanings-depe
2023/12/24(일)
붓다 담마의 독특함은 출세간 성스런 팔정도(lōkuttara Noble Eightfold Path)에 있다. 다른 종교들은 (천국의 영원한 행복이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도덕적인 삶을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그 이상이 세간의(평범한) 고귀한 팔정도(mundane Noble Eightfold Path)에 구현되어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kr/maha-chattarisaka-sutta-discou
2023/12/25(월)
각자가 다음 생에서 사람이 될 것인지, 천신이 될 것인지, 동물이 될 것인지는 우리가 바라는 것(또는 기도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발하는 가띠(gati)의 종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따빤나(Sōtapanna)의 가띠(gati)’ 즉, ‘아리야 가띠(Ariya gati)’를 계발함으로써 바로 이번 생에서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담마(올바른 세계관)를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삼마 딧티(Samma Ditthi, 정견)를 기르고 계발하는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gati-to-bhava-to-jati-ours-to
2023/12/26(화)
우리 주위에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무수한 유정체(간답바가 내려앉은 미생물)가 있을 수 있으며, 깊이 생각하면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행을 하면 그들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생명을 죽이지 않고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생명을 유지하는 목적(세상/세상것에 대한 갈망/갈애가 있음)에서는 업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업이 되지만, 열반을 향한 목적으로 살아간다면 업이 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https://cafe.naver.com/puredhamma/2690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3199837619
2023/12/27(수)
어떤 감각 사건도 잠깐 동안의 ‘스냅샷’에 불과하다. 그것은 잠깐 동안 지속되고 과거로 간다. 그것이 이해해야 할 매우 중요한(결정적인) 점이다.
~
‘경험하는 자’는 없다. 감각 입력은 과거 원인(kamma, 깜마)의 결과(깜마 위빠-까, kamma vipāka)로 들어온다.
출처: https://puredhamma.kr/sakkaya-ditthi-in-terms-of-att
2023/12/28(목)
[세상/세상것에서] 욕망을 충족하려는 것을 그치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닙바-나에 이르는 길’이다.
The attachment to cessation of gratification is, ‘Path to Nibbana’.
출처: https://www.youtube.com/live/hBhr9RKo6N8?si=lJo5dTcdLhcZ7d0G 의 재생시각 1:18:48
2023/12/29(금)
주어진 아-람마나(ārammana, 시각, 소리 등)를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가치가 있거나 유익하다고 인식하는 경우에만 그럴 것이다. 그 인식은 그 감각 경험들이 자신의 것이라는 잘못된 견해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논의했듯이, 그 잘못된 견해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다.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지닌 사람은 그 경험들이 단지 과거 원인의 결과라는 것, 즉 그것들이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좋은 경험’을 유지하거나 ‘나쁜 경험’을 피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상황을 통제하려고 한다. 따라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가진 자는 누구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를 거칠 가능성이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kr/sakkaya-ditthi-in-terms-of-att
2023/12/30(토)
붓다 담마는 세간에서 궁극 행복을 구하는 다른 가르침과는 달리, 세간(세상/윤회) 자체가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을 지닌 것이므로 궁극 행복이 불가능하므로 출세간의 행복을 구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므로, 원래 출가자 또는 출가자의 마음가짐을 어느 정도 지닌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이므로 세간적 종교가 아니다.
붓다 담마는 세간의 특성, 즉 아닛짜/둑카/아낫따를 명확하게 알도록 가르치며 마음이 열반을 향하도록 하여 세상(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는 (궁극) 목적의 가르침이다. 이는 ‘앗사다/아니나와/닛사라나’로 요약되며, 따라서 세상(특히, 감각적 즐거움의 세상)의 위험함(결점)을 인식할 수 없는 (완전히 눈먼) 자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
세상것을 즐기거나 혐오하거나 무관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세상(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2023/12/31(일)
붓다께서는 “Pabhassaramidaṁ (Pabhassaraṁ 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로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빅쿠들이여, 마음은 (본질적으로) 오염되지 않았으므로 재탄생의 원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오염원에 의해 더럽혀진다.”다.
그러나, 그것은 각 찟따가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로 시작되고 그 짧은 수명 중에 오염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것은 오염된 상태에서 시작된다.
출처: https://puredhamma.kr/each-citta-starts-with-dist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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