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Dhamma 공부/PD 관련 포스트

2023년 5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3. 5. 31. 05:45

2023년 5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3/05/01(월)

 

감각 경험은 과거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자아(self)’를 가정하지 않고는 그 감각 경험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 감각 입력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자아(self)’를 믿는 마음성향(mindset, 사고 방식)을 고려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

연기(Paṭicca Samuppāda)에 대해 논의하면,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라는 잘못된 견해로 인해 미래 고통(괴로움)이 일어나는 이유가 분명해 질 것이다. 그것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앗따(atta) / 앗따-(attā), 그리고 아낫따(anatta) / 아낫따-(anattā)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출처: 겉보기 ‘자아’는 깜마 발생에 관련되어 있다 ( https://puredhamma.kr/an-apparent-self-is-involved-i

 

2023/05/02(화)

 

업 씨앗의 수명이 91대겁이라는 것은 삶 중에 과보로 나타나는 약한 깜마 위빠까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며, 재탄생을 일으키는 강한 자나까 깜마(janaka kamma)에 대해서는 그 수명 상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없으며 수백만 대겁이 될  수도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arupa-loka/#post-44559 및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arupa-loka/#post-44564 

 

2023/05/03(수)

 

수카 웨-다-나(sukha vēdāna), 둑카 웨-다-나(dukkha vēdāna), 및 아둑카마수카 웨-다-나(adukkhamasukha vēdāna)를 기반으로 하여, 세 가지 각각 해당하는 라-가-누사야(rāgānusaya), 빠띠가-누사야(paṭighānusaya), 및 아윗자-누사야(avijjānusaya)라는 아누사야(anusaya)가 초래된다.

‘웨-다-나’에 들러붙게 되면 ‘아누사야’의 성장[쉽게 아사와로 발현됨]으로 이어진다.

출처: 겉보기 ‘자아’는 깜마 발생에 관련되어 있다 ( https://puredhamma.kr/an-apparent-self-is-involved-i

 

2023/05/04(목)

 

나마스까-라야: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

<평범한 의미> 

붓다에 대한 예경: “존재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고 완전히 깨닫고 번뇌에서 벗어난 분에게 예경합니다.” 또는 “축복된 분, 고귀한 분, 완전히 깨달은 분에게 예경합니다.

<심오한 의미>

세상 것들을 가지려고 하는 집착을 제거하는 결의를 하는 것: “나의 몸과 다른 세상 것들을 지혜로 검토하여, 그런 것에 집착함이 무익하고 헛됨을 이해하고, 31존재계에 재생하는 과정을 없애는 것으로 기울여 열반을 얻겠습니다.

출처: 나마스까-라야; 붓다에 대한 예경 ( https://puredhamma.quv.kr/88

 

2023/05/05(금)

 

불교(붓다 담마)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사성제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전부다.

사성제는 삼특상(제1성제에 포함)과 연기(제2성제에 포함)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으며, 목표와 실천의 결과가 제3성제로 제시되고, 그리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의 방법(길)이 제4성제로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제1성제가 올바르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올바른 제3성제로 마음이 열반을 향할 수 있고, 제2성제가 올바르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올바른 제4성제로 실천이 가능하다.

 

2023/05/06(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숲에 숨어 산다고 해서 존재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정의 삶을 포기하는 윤회 경향을 가진 일부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시간을 보내는 빅쿠(bhikkhu)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해야 할 것은 존재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고, 유일한 해결책이 최소한 닙바-나(Nibbāna, 열반)의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출처: 모든 것이 아닛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 https://puredhamma.quv.kr/48 )

 

2023/05/07(일)

 

사성제는 단순한 세상의 (원인/결과의) 진리가 아니라 (열반에 이르게 하는) 성스런(출세간) 진리다(4비성제와 4성제의 차이는 https://m.blog.naver.com/hojanyun/222645436393 참조).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사 아꾸살라 행을 하는 자가 수행/(올바른)노력을 하지 않는 범부 중생이고,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사 꾸살라 행을 하는 자가 평범한(세간) 수행/노력을 하는 범부 중생이며,

사성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다사 꾸살라 행을 하는 자가 성스런(출세간) 수행/노력을 하는 유학 성자고,

사성제를 완전히 이해하고 다사 꾸살라 행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뿐냐) 끼리야 행을 하므로 수행(노력)할 필요가 없는 자가 무학 성자(아라한)다.

 

2023/05/08(월)

 

불자는 항상 사성제를 기준(바탕)으로 생각/말/행동해야 한다.

불자들의 쓸데없는 생각/말/행동은 사성제를 기준(바탕)으로 생각/말/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범부 중생의 불자는 항상 사성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도록(마음이 열반을 향하도록) 생각/말/행동하는 수행/노력을 해야 하고,

유학 성자의 불자는 항상 사성제를 더 명확히 이해하도록(마음이 더 많이/자주 열반을 향하도록) 그에 따라 생각/말/행동하는 수행/노력을 해야 한다.

 

2023/05/09(화)

 

나마스까-라야(붓다에 대한 예경)의 심오한 의미는 세상 것들을 가지려고 하는 집착을 제거하는 결의를 하는 것으로서, 나의 몸과 다른 세상 것들을 지혜로 검토하여, 그런 것에 집착함이 무익하고 헛됨을 이해하고, 31존재계에 재생하는 과정을 없애는 것으로 기울여 열반을 얻겠다” 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성제에 따라 열반을 목표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라고 붓다께 예경하는 것의 깊은 의미는 붓다 담마의 사성제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2023/05/10(수)

 

‘왜 사는가?’라는 물음에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라고 답할 필요는 없다.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이것이 ‘삼특상’을 명확히 이해하는 대답이다.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면, ‘세상의 삼특상’의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 중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라는 말에 내포된 잘못된 출세간 견해를 여전히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블로그 댓글) 2023/05/11

 

질문: 

그렇다면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어떻게 내리면 좋을까요? 이게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가 아니라 이거다라는 식의 답 말이죠.

 

답변: 

본문에 있는 것과 같이, '다시 태어나지 않음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붓다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둑카와 둑카의 소멸이라고 하신 것에서, 둑카(세상)에서 벗어나 둑카의 소멸(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라는 것을 쉬운 말로 풀어쓴 것입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둑카(숨겨진 괴로움을 포함하는 의미)를 겪는 세상에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것이 세상이므로, 이런 상태에서 죽고 싶다는 것은 곧 살고 싶다는 것이고, 이런 상태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곧 죽고 싶다는 것으로서, 아직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마음이 열반을 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세간 수행부터 시작하여 출세간 수행으로 (유여)열반에 이르기> 포스트로 https://blog.naver.com/hojanyun/223080948339 에 정리된 것이 있으므로, 숙독해 보세요.





2023/05/11(목)

 

붓다 담마는 사람의 육안이나 도구로 볼 수 있는 가시 레벨에 따른 세계 체계의 세상을 말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붓다 담마는 청정한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숫닷타까 레벨에 따른 마노마야 까야를 말하는 미시레벨의 세상과, 청정한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마노마야 까야에 따라 나누어지는 무수한 31계를 가진 무수한 삼천 대천세계를 말하는 거시레벨의 세상과, 이들 세상과 상호배타적인 열반을 말하는 가르침이다.  

 

2023/05/12(금)

 

출세간 정견이 확립되었다는 것은 세상/세상것에 대해 탐할 이유가 없고 성낼 이유가 없는 견해가 확립되어 딧티 위빨라-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세상것에 대해 탐할 이유가 없고 성낼 이유가 없기 때문에 로바 레벨의 탐함이나 도사 레벨의 성냄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괴로움을 당하는 사악처에 떨어질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산냐- 위빨라-사와 찟따 위빨라-사가 남아 있으므로 라가 레벨의 탐함이나 빠띠가 레벨의 성냄은 일어나므로, (견딜 수 있는) 일정 수준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세간 정견만 확립된 상태에서는 선처에 태어나기 위해 도덕행을 하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세상/세상것에 대해 탐할 이유가 있고 성낼 이유가 있다. 따라서, 조건/환경에 따라 로버 레벨의 탐함이나 도사 레벨의 성냄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괴로움을 당하는 사악처에 떨어질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2023/05/13(토)

 

화를 푸는 것은 표출되는 와-찌/까야 상카-라로 강한 (나쁜)업씨앗을 형성하는 것이고, 화를 억누르는 것은 표출되지 않는 와-찌 상카-라로 약한 (나쁜)업씨앗을 형성하는 것으로 둘 다 나쁘다.

전자는 재생연결되는 나쁜 과보를 받게 되는 강한 (나쁜)업씨앗을 형성한 점에서 나쁘고, 후자는 삶 중의 나쁜 과보를 받는 약한 (나쁜)업씨앗을 더 축적하여 나중에 더욱 강한 나쁜 재생연결의 나쁜 과보를 받게 되는 더욱 강한 (나쁜)업씨앗을 형성할 가능성을 높이는 점에서 나쁘다.

 

2023/05/14(일)

 

화를 푸는 것과 화를 억누르는 것은 대상에 대해 발현되는 또는 저류하는 들러붙음(땅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하는 상태이므로, 둘 다 나쁜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 정견을 통해 그 대상(또는 그 반대되는 대상)에 대해 발현되는 들러붙음(땅하-)를 약화시키는 세간 수행이 우선 필요하고, 그 다음 출세간 정견을 통해 그 대상에 대해 저류하는 들러붙음(땅하-)를 약화시키는 출세간 수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자는 선처에 태어나기만 하는 업씨앗(뿐냐 깜마)을 형성하는 범부 중생의 수행이고, 후자는 선처에 태어나면서 열반을 향하는 업씨앗(꾸살라 깜마)를 형성하는 유학 성자의 수행이다.

 

2023/05/15(월)

 

<내생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것과, 내생으로 반드시 가져가는 것>

아라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죽으면(현재 마노마야 까야가 끝나면), 생 또는 윤회가 끝나고 내생으로 가져가는 것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반드시 내생이 있으며, 내생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있고, 내생으로 반드시 가져가는 것이 있다.

자신(마노마야 까야/간답바)이 내생(바와)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자신(마노마야 까야)의 현재 마노마야 까야와, (다른 유정체와 공유하는) 물질계의 루빠다.

자신(마노마야 까야/간답바)이 내생(바와)으로 반드시 가져가는 것은  자신(마노마야 까야)이 죽을 때 형성한 새로운 마노마야 까야와, 각자의 정신계에 계속 축적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정신적 인상인 각자의 오온(업에너지가 없는 나마곳따)과 오취온(업에너지가 있는 담마-/업씨앗)이다. 

오취온은 각자의 오온에 집착된/집착되는/집착될 각자의 집착 무더기다.

 

2023/05/16(화)

 

퓨어담마에서 자신과 세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답바(또는 마노마야 까야)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인데, 간답바 상태는 삼장에 명확히 나오는 증거에 따른 것이고 경험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있음을 https://puredhamma.kr/gandhabba-state-evidence-fr-t  및  https://puredhamma.quv.kr/136 포스트를 통해 확실히 알 필요가 있다.

 

2023/05/17(수)

 

무엇에 어떻게 들러붙는가?

루빠에 대해 로바/도사/모하의 마음에 의한 정신적 인상(네가지 무더기)로 들러붙는다.

그리고, 그 정신적 인상(네가지 무더기), 그 중에서도 특히 느낌의 무더기에 로바/도사/모하의 마음으로 들러붙는다.

즉, 루빠 무더기(나마 무더기에 의해 형성되는 무더기)와 나마 무더기에 들러붙는데, 이것은 바로 세상(나마 무더기와 루빠 무더기를 합친 일체 또는 오온)에 들러붙는 것이다.

세상에 들러붙지 않는 마음이 열반을 향하는 마음이다. 

 

2023/05/18(목)

 

‘까-마 가띠(kāma gati)’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루-빠(rūpa) 및  아루-빠(arūpa) 가띠(gati)’, 즉 ‘루-빠(rūpa) 및  아루-빠(arūpa) 로-까(lōka)에 묶이는 선정 즐거움’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가 없다’ 또는 ‘나가 없다’와 같은 것에 명상하는 것은 전혀 쓸모 없다. 자아의 느낌 (또는 더 정확하게는 ‘마-나_māna’라는 상요-자나_samyōjana)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제거되며, 이는 두가띠(dugati)를 잃는 것과 비교하여 무한히 멀리 떨어져 있는 단계다.

31영역에 있는 어떤 것의 흔적이라도 갈망하는 한, ‘자아’ 또는 ‘나라는 감각’에 대한 인식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은 앗사-다(assāda), 즉 ‘마음이 만든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결실없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how-assada-pleasures-lead-to-d 

 

2023/05/19(금)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가장 낮은 4가지 영역(apāyā, 아빠-야-)에는 과도한 고통(괴로움)을 유발하는 조건이 있다. ‘까-마 로-까’의 상위 2가지 영역에는 [올라 갈수록]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주는 루-빠 루-빠(rūpa rūpa, 시각 대상), 삿다(sadda, 소리), 간다(gandha, 냄새), 라사(rasa, 맛), 및 뽓땁바(pottabba, 신체 접촉)가 있다.

~

인간 영역에는 감각적 즐거움을 주도록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즐거운 것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 바와(human bhava)가 ‘좋은 바와’이기 때문이다. 데와(deva, 천신) 영역에서는 훨씬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aguna-kama-kamaraga-k 

 

2023/05/20(토)

 

인간으로서 우리는 까-마 구나(kāma guna)를 자연스럽게 접한다. 우리는 5가지 육체적 감각으로 즐거움을 주는 감각 대상을 자연스럽게 접한다. 물론, 데와(deva, 천신)들은 훨씬 더 강한 까-마 구나(kāma guna)를 접한다.

그러므로,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러한 ‘즐거운 것들’에 들러붙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들은 이 세상 것들, 특히 까-마 구나(kāma guna)가 있는 것들이 장기적인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갈망은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 즐거움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까-마 구나(kāma guna)가 있는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이용하거나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aguna-kama-kamaraga-k 

 

2023/05/21(일)

 

‘모든 것은 내 탓이다’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모든 것’과 ‘내 탓’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올바르게 사용하고 올바르게 행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여기서 ‘모든 것’은 모든 원인과 모든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근본원인(탐/진/치와 불탐/부진/불치)과 자신의 행에 의한 조건을 말하며, 타자의 행과 외부 환경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내 탓’이라고 할 때, 참회의 마음(불탐/부진/불치의 마음에 속함)으로 내 탓이라고 해야 하며, 후회의 마음(탐/진/치의 마음에 속함)으로 내 탓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PS)

즉, 위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마노마야 까야(현재 바와)와, 이 마노마야 까야에서 생멸하는 마음과, 생멸하는 마음에 의해 형성되는 오온(정신적 인상) 및 오취온(업에너지가 관련된 오온)으로 이루어지는 자신의 세상을 말한다. 

이 자신의 세상이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자신이 열반에 든다고 해서 모든 세상이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2023/05/22(월)

 

어떤 사람이 까-마 구나(kāma guna)를 가진 감각 입력에 들러붙어 감각적 생각(즉, 와찌 상카-라)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그것은 ‘까-마(kāma)’ 또는 까-마 라-가(kāma rāga)로 이어진다. 감각적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또한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라고 한다. 그것은 윤회로 이어지는 상깝빠를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로 생각하는 것, 즉  그런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탐욕스런 생각을 하는 것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것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 즉 관련된 신체적 행위를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도 이어지기 쉽다.

https://puredhamma.kr/kamaguna-kama-kamaraga-k 

 

2023/05/23(화)

 

각 맹인은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더듬어 만져보고, 코끼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의 견해를 생각해낸다. 꼬리를 만져본 자는 코끼리가 밧줄과 같다고 말하고, 다리를 만져본 자는 코끼리가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등이다. 

꼬리를 잡고 있는 맹인은 “내가 경험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이 밧줄과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며 코끼리가 밧줄과 같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맹인은 자신이 코끼리 전체의 일부만을 경험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how-do-we-decide-which-view-i   

 

2023/05/24(수)

 

맹인이 코끼리의 다리를 붙잡고 “내가 경험하는 것은 이것이고,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 나는 내가 경험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가 옳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자연 법칙과 모순되는 딧티(diṭṭhi)를 붙잡고 있다. 일단 부처님의 메시지를 들으면, 적어도 붓다께서 제시하신 증거를 보고 그 메시지의 신빙성을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아무도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수 없는 까닭이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kr/how-do-we-decide-which-view-i  

 

2023/05/25(목)

 

이제, 붓다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많은 버전의 붓다 담마가 있으므로, 어떤 버전을 믿어야 할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붓다께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셨다. 다음 조건(요건)을 만족하는 버전을 찾아야 한다.

모든 면에서 숫따(Sutta) 및 위나야(Vinaya) (그래서, 아비담마)와 일치해야 한다. 이것들은 약 500년 동안 구두로 전승되었고, 그 다음 약 2000년 전에 빠알리 띠삐따까(Pali Tipitaka)로 기록되었다.

띠삐따까(숫따, 위냐야, 아비담마)의 세 가지 서술은 모두 일치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how-do-we-decide-which-view-i   

 

2023/05/26(금)

 

모든 이득을 거두려면, 붓다 담마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부분을 집어 고르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마음편한 담마 부분과 함께 살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이치에 맞으면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치에 맞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 그림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끼리의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가 정말로 기둥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맹인과 같을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how-do-we-decide-which-view-i   

 

2023/05/27(토)

 

까-마 로-까(kāma lōka)에는 즐겁고, 유쾌하고, 유혹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단지 그것들을 경험하는 것은 까-마(kāma)가 아니다. 진정한 본질을 이해 한 자는 그것들에 들러붙지 않는다. 그러나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있는 것들의 진정한 아닛짜 본질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그것들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그것들을 갈망하고 생각함으로써(까-마 상깝빠_kāma Saṅkappa, 또는 와찌 상카-라_vaci saṅkhāra를 생성함), 만족을 얻는다(까-마 앗사-다_kāma assāda). 그것이 까-마(kāma)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aguna-kama-kamaraga-k 

 

2023/05/28(일)

 

동물들은 ‘강한 좋은 깜마(kamma)’나 ‘강한 나쁜 깜마(kamma)’를 행할 수 없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만, 탐함이나 미워함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존을 위해 행한다. 그것은 단지 새들이 둥지를 짓거나 새끼 거북이가 바른 방향으로 바다로 향하는 본능과 같다. 아비담마(Abhidhamma) 말로, 그들은 대부분 ‘우뻬까 사하가따 찟따(upekkha sahagata citta)를 생성하며, 그 찟따들은 자와나(javana)의 힘이 훨씬 더 약하다.

출처: https://puredhamma.kr/feelings-sukha-dukha-somanassa 

 

2023/05/29(월)

 

동물은 좋은 업이나 나쁜 업을 많이 축적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 [동물] 바와(bhava)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다른 동물을 죽여 [먹음으로써] 생존하기 때문이다. 같은 식으로, 매우 드물지만 그들이 ‘좋은 생(예를 들어, 인간 생)’을 얻을 때, 그것은 이전의 ‘좋은 생’에서 행해진 ‘좋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때문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feelings-sukha-dukha-somanassa 

 

2023/05/30(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있는 모든 자는 까-마 구나(kāma guna)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있는 존재의 자연적 결과다. 그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로 즐김에 따라 까-마(kāma) 수준으로 높아지는 경향이다. 까-마(kāma)가 더 높은 수준이 되면, 그것이 ‘까-마 라-가(kāma rāga)’다.

그 갈망은 진정한 본성(아닛짜, 둑카, 아닛짜)에 대한 이해, 즉 그것들이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써 포기하게 된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aguna-kama-kamaraga-k 

 

2023/05/31(수)

 

수카 웨-다나-(sukha vēdanā)와 두카 웨-다나-(dukha vēdanā)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발생한다. 소-마낫사 웨-다나-(sōmanassa vēdanā)와 도-마낫사 웨-다나-(dōmanassa vēdanā)는 상카-라(saṅkhara)로 인해 발생하며, 이는 결국 우리의 가띠(gati)와 아-사-와(āsāva)로 인해 발생한다. 우리가 상카-라(saṅkhāra)를 행하면 행할수록 주어진 가띠(gati, 습관)가 더 강해지며, 그 결과로 아-사-와(āsāva, 갈망)가 되고 윤회 여정(재탄생 과정)을 부채질한다. 이 악순환은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해야만 끊을 수 있다.

출처: https://puredhamma.kr/feelings-sukha-dukha-somanas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