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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3. 9. 30. 06:48

2023년 9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3/09/01(금)

 

길(도)을 시작할 때에 ‘재탄생을 끝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가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면, 곧바로 낙담할 것이다. 먼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 목표는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이어야 하고, 그때에도 먼저 기본 개념을 배워야 한다.

출처: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빠알리 핵심어의 왜곡 https://puredhamma.kr/distortion-of-pali-keywords-in 

 

2023/09/02(토)

 

담마는 어떤 가르침이나 원리 또는 사람이 따르는 길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일반적 낱말이다.

만약 우리가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면, 좋은 담마를 나타내는 삿 담마(sath Dhamma)(‘saddhamma’로 발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반대는 아담마(adhamma)다

붓다 담마는 삿담마(saddhamma)이고, 이 세상의 모든 다른 담마(Dhamma)는 아담마(adhamma)다. 물론, 아담마(adhamma)에는 다른(다양한) 레벨이 있다. 

때때로, 아나리야 담마(anariya dhamma)아리야 담마(ariya dhamma)라는 낱말은 아담마(adhamma)와 삿담마(saddhamma)  대신에 사용된다.

출처: https://puredhamma.kr/dhamma-different-meanings-depe

 

2023/09/03(일)

 

담마-(dhammā)들은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에 의해 생성된 깜마 에너지다. 깜마 에너지를 가진 그런 담마-(dhammā)는 아비상카-라를 기르는 중에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서 생성된다. 

그런 깜마 에너지는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단계에서 강화된니다. 그런 깜마 에너지(또한 ‘깜마 비자_kamma bija’라고도 함)는 삶 중에 깜마 위빠-까를 가져오거나 재탄생(자-띠, jāti)으로 이끌 수 있다. 따라서, 담마-(dhammā), 깜마 에너지, 바와(bhava), 및 깜마 비자(kamma bija)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담마-(dhammā)는 우리 모두가 재탄생 과정을 통해 축적한 업 에너지다. 우리는 ‘아윗자- 빳짜야- (아비)상카-라(avijjā paccayā (abhi)saṅkhāra)’로 시작하는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으로 깜마 에너지를 축적한다.

출처: https://puredhamma.kr/dhamma-dhammaa-different-but-r 

 

2023/09/04(월)

 

깜마 에너지(또한 ‘깜마 비자_kamma bija’라고도 함)는 삶 중에 깜마 위빠-까를 가져오거나 재탄생(자-띠, jāti)으로 이끌 수 있다. 따라서, 담마-(dhammā), 깜마 에너지, 바와(bhava), 및 깜마 비자(kamma bija)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양한 유형의 아담마(adhamma)에 기반한 담마-(dhammā)를 기초로 일어난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 즉 삿담마(saddhamma)는 담마-(dhammā)를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에,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31영역 세상을 계속 유지하는 담마-(dhammā)를 중립화/비활성화시키는 것을 돕는다.

출처: https://puredhamma.kr/dhamma-dhammaa-different-but-r 

 

2023/09/05(화)

 

불교의 왜곡은 세상/세상것에서 궁극적 행복을 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세상의 특성을 말하는 틸락카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생기며,

이러한 이해 부족에 따라 사성제가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기에 생긴다.

왜곡된 불교인 세속불교는 모두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세상을 아닛짜/둑카/아낫타 특성을 가진 것으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닛짜/수카/앗따 특성으로 가진 것으로 왜곡하여 보기 때문이다.

 

2023/09/06(수)

 

열반을 향하는 수행은 세상을 아닛짜/둑카/아낫타 특성을 가진 것으로 있는 그대로 보는 요니소 마나시카라와 함께 올바른 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열반을 향한다는 것은 열반을 목적/목표로 하는 것을 말하며, 열반을 향한 행은 세상/세상것에 대한 탐진치가  없는 행, 즉 출세간적 알로바/아도사/아모하의 행이다.

 

2023/09/07(목)

 

<까-야-/웨다나-/찟따/담마누빳사나에서 말하고 있는 것>

육체적 몸은 애착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띨락카나 특성으로 봄에 따라 세상에서 벗어나 닙바-나로 향하게 하는 수행대상이 되어야 함을 까-야-누빳사나에서 말하고 있다.

느낌과 마음과 담마-가 일어나는 정신적 몸도 들러붙음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띨락카나 특성으로 봄에 따라 세상에서 벗어나 닙바-나로 향하게 하는 수행대상이 되어야 함을 웨다나-누빳사나/찟따누빳사나/담마누빳사나에서 말하고 있다.

 

2023/09/08(금)

 

세간 수행은 모든 감각 입력에 대해 세간 정견(세상 및 업과 과보에 대한 올바른 견해)의 인식에 따라 다사아꾸살라를 하지 않고 다사꾸살라로 반응하여 마음이 선처를 향하는(선처에 태어나는) 행을 하는 것이고,

출세간 수행은 모든 감각 입력에 대해 출세간 정견(띨락카나에 대한 올바른 견해)의 인식에 따라 다사아꾸살라를 하지 않고 다사꾸살라로 반응하여 마음이 닙바-나를 향하는(닙바-나에 이르는) 행을 하는 것이다.

(붓다 담마는 출세간 수행을 통해 닙바-나에 이르게 하는 목적(목표)의 가르침이며, 붓다 담마에서 세간 정견/수행은 출세간 정견/수행을 위한 기본 정견/수행이며 세간 정견/수행 자체가 목적(목표)이 될 수 없으며, 출세간 정견/수행으로 나아갈 수 없는 세간 견해/수행을 말하는 가르침은 붓다 담마가 아니다.) 

 

2023/09/09(토)

 

세상의 특성인 띨락카나를 알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면서 세상 어떤 것에 들러붙지 않는다는 것은 세간 수행으로 선처로 향하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특성인 띨락카나를 알고 인식하면서 세상 어떤 것에 들러붙지 않는다는 것은 출세간 수행으로 닙바-나로 향한다는 것이다. 

 

2023/09/10(일)

 

외부 감각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까-마구나 때문인데, 이 까-마 구나는 외부 감각 대상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즉, 6가지 감각 입력에 대해 “기대되고(iṭṭhā),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고, 즐겁고, 감각적이고, 갈망을 불러 일으키는(rajanīyā)” 6가지 유형의 까-마 구나는 외부 감각 대상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그것들은 감각 입력이 들어올 때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우리의 ‘초기 닛짜 산냐-’에 기반하여(또는 육체 접촉의 경우에 초기 수카/둑카 웨다나-에 기반하여) 우리 마음이 외부 감각 대상에 부여하는 6가지 성질이다. 까-마 구나는 성스런 길을 따라감에 따라 쇠퇴(감소)하고 아라한 단계에서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제거된다.

출처: https://puredhamma.kr/kamaguna-kama-kamaraga-k 에서 편집

 

2023/09/11(월)

 

불교 수행은 초보수행이든 중급수행이든 고급수행이든, 범부중생의 수행이든 성자의 수행이든,

다사 아꾸살라(열가지 불선행)를 하지 않고 다사 꾸살라(열가지 선행)를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구분은 거친 행을 우선 다스리고 미세한 행을 다스리는 것으로 진행하는 것에 따른 것일 뿐이다.

다사 아꾸살라에는 사견이 있고, 다사 꾸살라에는 정견이 있다.

출처:  https://cafe.naver.com/puredhamma/549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1719644307

 

2023/09/12(화)

 

유신견이 없다는 것은 오취온의 견해가 없다는 것이며, 이는 닷사네나 빠하땁빠를 통해 수다원 단계에서 이루어지며, 그렇더라도 오취온이 형성되며 아스미 마-나(asmi māna)가 여전히 작용한다.

오취온이 형성되지 않고 아스미 마-나가 사라지는 것은 바와나 빠하땁빠를 통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아라한 단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2023/09/13(수)

 

아누사야(Anusaya)를 줄이고 제거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아닛짜/둑카/아낫따’ 산냐 또는 ‘앗띠-야띠 하라-야띠 지굿차띠’ 산냐를 기르고 확립한다는 것이다.

아누사야 담마는 세상의 특성에 대한 잘못된 산냐 때문에 형성된/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https://cafe.naver.com/puredhamma/2707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3206106724 참조 )

 

2023/09/14(목)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지만, 반드시 과보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과보를 야기하는 업행일 경우에만 반드시 업씨앗이라는 과보가 따른다.

그렇다고 모든 업씨앗이라는 과보가 열매맺는 것은 아니다.

업씨앗이 과보로 들어와 과보식이 일어난 후, 현재 자신의 발현 가띠에 따라 움켜잡힐 때에만 열매가 맺힌다.

 

<보충설명>

물질계의 외부 루빠가 내부 루빠에 부딪치는 것은 과보가 아니라 조건일 뿐이며, 그 조건에 따라 각자의 정신계와 (나마곳따 및 담마-/업씨앗과 관련된 업과 과보의 자연원리에 따른) 순간적인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과보식(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이 과보를 받는 것이며,

각자의 정신계의 업씨앗이 그 자체로 마음에 들어올 때 일어나는 과보식(의식, 즉 마노 위빠까 윈냐-나)이 과보를 받는 것이다.

이 과보로 일어나는 과보식으로 과보를 받은 후에, 이어서 발현 가띠(현재의 마노마야 까야에서 작용하는 가띠)에 따라 새로운 업행이 일어날 때, 그것을 과보가 열매맺는 것이라고 한다.

과보가 열매맺는 것은, 삶 중에 새로운 깜마 바와/업씨앗이 형성되거나, 재생연결시에 새로운 웁빳띠 바와/마노마야 까야가 형성되는 것이다.

 

2023/09/15(금)

 

세상의 모든 것(유정체와 무정체)은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이 있으므로 들러붙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자신(마노마야 까야)이 세상의 모든 것(외부 대상)을 앗사-다(마음이 만든 즐거움, 특히 감각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유정체에게는 그에 더하여 그 유정체가 앗사-다를 누리도록 하는 것을 도우고, 그것에 들러붙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2023/09/16(토)

 

보통 사람들에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면 도사(화냄)/빠띠가(짜증)가 일어나므로 조심해야 하며,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도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 유정체에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상관없으나, 궁극적으로는 그 유정체가 감각적 즐거움을 줄이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참으로 그 유정체를 위하는 길이며, 이것이 최상의 멧따, 즉 아리야 멧따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2023/09/17(일)

 

살아가는 모든 행위 , 즉 모든 상카-라에는 업을 짓지 않는 상카-라(호흡, 물을 먹거나 배고파 단순히 먹는 행, 등)에도 상카-라 둑카가 있으나, 대개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

아비상카-라는 업을 짓는 상카-라이므로 궁극적으로 모두 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뿐냐 아비상카-라이며, 아라한에 이르기 전에는 열반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는 뿐냐 아비상카라(또는 꾸살라물라 상카-라)는 업을 짓지 않는 상카-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2023/09/18(월)

 

세상 모든 것이 둑카라는 것은 상까따로 반드시 둑카(또는 도마낫사) 느낌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상까따의 조건으로 일어나는 과보로 둑카 느낌이 일어나거나 상까따에 들러붙어 반응하는 행으로 도마낫사 느낌이 일어나는 둑카 특성(둑카 둑카, 위빠리나마 둑카, 상카-라 둑카)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2023/09/19(화)

 

세상(윤회)에 있는 한, 상까따의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과보로 위빠까 웨다나인 둑카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으나, 상까따에 들러붙어 반응하는 행에 의한 쩨따시까 웨다나(삼팟사 자 웨다나)인 도마낫사 느낌을 완전히 멈출 수는 있으며, 

들러붙지 않고 반응하는 행에 의한 쩨따시까 웨다나(니라미사따라 웨다나)를 일어나게 하여(꾸살라 물라 연기에 의함), 결국 아라한을 거쳐 모든 웨다나가 일어나지 않는 빠리닙바나(반열반/무여열반)에 이르는 것으로, 둑카 특성을 가진 상까따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다. 

 

2023/09/20(수)

 

몸(정신적 몸과 육체적 몸)이 있는 한, 그 몸의 타고난 질과 조건에 따라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즉, 선처의 몸과 악처의 몸의 질과 그에 따른 (환경) 조건에 따라 좋은 과보와 나쁜 과보를 받게 되어 있으며, 그 과보를 받으며 미래에 형성되는 몸의 질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상카라(상카라 둑카를 수반)를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중립상카-라가 아니라 뿐냐비상카-라(유학성자일 경우에는 꾸살라물라 상카-라)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상카라를 통해 자신의 미래 운명을 잘 바꿀 수 있는 곳은 선처에 태어났을 때 뿐이며, 그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가 최적이다.

사악처, 특히 지옥/아귀계에서는 나쁜 과보만 받으며 어쩔수 없이 참으로 난감한 상태(아낫따)로 지내야 하며, 범부 중생의 경우에 천상에서는 좋은 과보만 받으며 대개 그 과보를 누리거나 즐기게 될 뿐이다.)

 

2023/09/21(목)

 

붓다께서 둑카와 둑카의 소멸만을 가르친다고 하신 것은 윤회 둑카와 윤회 둑카의 소멸을 말씀하신 것이다.

윤회 둑카는 마음의 일어남으로 함께 생길 수 밖에 없는 모든 느낌에 의한 둑카이며, 둑카 둑카(두카 느낌)/위빠리나마 둑카(수카 느낌)/상카-라 둑카(우뻭까 느낌)을 포함하는 둑카다.

이 윤회 둑카는 세상/세상것의 특성(아닛짜/둑카/아낫따)을 모르거나 잊고 세상/세상것을 갈망하는 아꾸살라 마음이나 세간적 꾸살라 마음에 의해 강화되고 유지되고, 세상/세상것의 특성을 알고 상기하며 세상/세상것을 갈망하지 않는 출세간적 꾸살라 마음에 의해 약화되고 제거된다.    

 

2023/09/22(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아담마(adhamma)의 다양한 유형을 통해 생성된 (깜마 에너지를 가진) 담마-(dhammā)를 기반으로 일어난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 즉 삿담마(saddhamma)는 담마-(dhammā)를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에,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담마-(dhammā)를 중립화/비활성화시키는 것을 돕는다. 달리 말하면,  담마-(dhammā)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닙바-나(Nibbāna), 즉 ‘죽음없는 상태’를 얻는 것을 돕는다.

출처: https://puredhamma.kr/difference-dhamma-and-sankhara 

 

2023/09/23(토)

 

아무리 붓다 담마를 공부하고 많이 안다고 해도, 세상/세상것을 갈망하는 것이 괴로움의 씨앗을 축적하고 괴로움을 바로 느끼기도 하기만 하는 것일 뿐 의미없고 실속없고 결실없다고 깨닫고 갈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적이 되지 않으면, 그 공부와 지식은 괴로움의 소멸에는 별 소용이 없다.

즉, 배운/인식하는 만큼 그에 따라 세상/세상것을 갈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은 세상/세상것의 특성인 아닛짜/둑카/아낫따를 배워 알기는 하지만, 갈망하지 않는 그 실천을 할 수 있을 정도(강도)로 인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을 갈망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그 반대되는 세상의 것인 좋아하는 것은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며, 좋아하는 것은 갈망하지 않는 척 하기만 하는 것이며, 그 반대되는 좋아하는 것도 무의미하므로 갈망하지 않고 참으로 마음이 열반을 향하게 되는 꾸살라물라 연기가 한 번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운/인식하는 만큼이라도 그 반대되는 좋아하는 것도 갈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실천이 중요하며, 이것이 키이 포인트다.) 

 

2023/09/24(일)

 

세상 모든 것, 인식되는 모든 것은 아닛짜 본질을 지닌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아닛짜 산냐-를 육성해야 한다.

세상/세상것을 닛짜 본질로 인식하게 될 때, 삼팟사를 통해 갈애로 계속이어져 둑카가 되고 아낫따가 강화되는 오취온의 자기 세계가 구축된다.

아닛짜 산냐-에 따른 본격적 아나빠나 사띠 수행은 상견과 단견이 제거된 후에 가능하다.

 

2023/09/25(월)

 

세상의 행복은 지복이 아니다.

세상의 행복은 갈애의 일시적 충족이며, 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갈애가 표면화되어 괴로움과 불만족이 생기기 때문이며, 이것은 윤회(세상)의 유지와 지속으로 이끈다.

닙바-나의 행복은 지복이다.

닙바-나의 행복은 갈애의 영구적 소멸이며, 갈애가 제거되었으므로 갈애가 표면화될 수 없고, 갈애가 없으므로  괴로움과 불만족이 생길 수가 없으며, 이것이 윤회(세상)의 그침이다.

 

2023/09/26(화)

 

닙바-나로 가는 첫 걸음이 세상의 특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 즉 출세간 견해의 구축이며, 이 견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닛짜/둑카/아낫따 산냐를 개발하는 것이며, 이 구축/개발에 따른 올바른 출세간 견해(출세간 정견)로 행/수행하는 것이 붓다 담마를 참으로 실천하는 것, 즉 닙바-나로 향하여 닙바-나에 다가가는 행/수행(꾸살라 깜마)이다. 

그릇된 견해(사견)에 따른 행은 악처를 향하여 악처에 태어나는 업씨앗을 형성하는 행(빠빠 깜마)이며, 올바른 세간 견해(세간 정견)에 따른 행/수행은 선처를 향하여 선처에 태어나는 업씨앗을 형성하는 행/수행(뿐냐 깜마)이다.

 

2023/09/27(수)

 

왜 견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가?

견해를 바꾸지 않으면 세상/괴로움/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은 출세간 견해의 확립에 관련된 것이며, 닙바-나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립되어야 하는 견해와 관련된 것이다.

올바른 견해의 확립은 닷사네나 빠하땁빠에 속하며, 마음을 고요히 하는 수행만으로는 결코 확립될 수 없으며, 성자들(깔야-나밋따, 선우)로부터 올바른 붓다 담마를 들어야 한다.

 

2023/09/28(목)

 

바와나 빠하땁빠는 닷사네나 빠하땁바가 이루어진 성자들이 더 높은 도과에 이르기 위한 올바른 아나빠나사띠/사띠빳타나 수행을 하는 것이다. 

출세간 견해가 확립되지 않으면 닙바-나를 향한 올바른(출세간) 아나빠나사띠/사띠빳타나 수행을 할 수 없다.

물론 범부 중생들은 세상의 대상을 향한 평범한 의미의 세간 아나빠나사띠/사띠빳타나 수행은 할 수 있으나, 이때에도 그 사띠는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아꾸살라행을 멀리하고 꾸살라행을 가까이 하는 의미의 사띠로 대상에 집중하며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2023/09/29(금)

 

탐진치(로바/도사/모하)로 세상 무엇을 추구하는 삶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것이 일시적으로 충족되어도 열반에서 멀어지는 점에서 의미없고 가치없는 삶(팔정도가 없는 삶)이고, 

세간적 불탐부진불치(세간적 알로바/아도사/아모하)로 세상 무엇을 추구하는 삶은 오래 살수록 그것이 일시적으로 충족될수록 닙바-나로 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점에서 좀 의미깊고 좀 가치있는 삶(세간 팔정도가 있는 삶)이며,

출세간적 불탐부진불치(출세간적 알로바/아도사/아모하)로 닙바-나를 추구하는 삶은 세상 삶과 충족에 관계없이 닙바-나로 다가가는 점에서 매우 의미깊고 매우 가치있는 삶(출세간 팔정도가 있는 삶)이다.

 

2023/09/30(토)

 

Velāma Sutta (AN 9.20)’는 “yo ca accharāsaṅghātamattampi aniccasaññaṁ bhāveyya, idaṁ tato mahapphalataran” ti”, 즉, “손가락을 튕기는 동안이라도,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mahapphala).”라고 말한다. 그 숫따는 붓다나 백명의 빠쩻까 붓다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 더 공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출처: 아닛짜, 둑카, 아낫따 ㅡ 왜곡 연대기 https://puredhamma.kr/anicca-dukkha-anatta-distor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