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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3. 1. 31. 19:20

2023년 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3/01/01(일)

 

<세상에 산다는 것과 닙바-나(열반)>

세상에 산다는 것은 연기법에 따라 31계의 각 존재로 바뀌어 나타나는 ‘마노마야 까야’가 물질계 및 정신계와 상호 작용하는 현상이고, 이 현상이 그친 것(마노마야 까야가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 상태)이 닙바-나(열반)다. 

세상에 계속 살고자 행하는 것(윤회하는 아꾸살라 행)은 아윗자-(무지)와 땅하-(갈애)로 인한 것이고, 닙바-나(열반)에 들어가고자 행하는 것(윤회에서 벗어나는 꾸살라 행)은 빤냐-(지혜)로 인한 것이다.

 

[참고: 아꾸살라 행에는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이 세상을 향하여 행하는 뿐냐-행(뿐냐- 아꾸살라 행)이 포함되고, 꾸살라 행은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마음이 열반을 향하여 행하는 뿐냐-행(뿐냐- 꾸살라 행)이다. 아라한의 끼리야 행은 아꾸살라 행도 아니고 꾸살라 행도 아닌 ‘뿐냐- 끼리야 행’이다.]

 

댓글)

오늘 새해(2023년) 첫날 한두줄 메모장은 붓다 담마의 목표와 절차가 정리된 '세상/열반을 향하는 것으로 구분하여 정리한 표'를 다른 관점에서 요약한 것입니다.

 

2023/01/02(월)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 micchā diṭṭhi)는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ā)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잘못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행한 동일한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잘못된 견해가 없는 다른 사람이 행한 동일한 깜마에 비해 훨씬 더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에 이르게 한다.

출처: 아꾸살라 찟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견해

https://puredhamma.kr/critical-influence-of-wrong-vi 

 

2023/01/03(화)

 

소따빤나(수다원)은 어떤 자인가? 세상이 어떤 곳이고 열반이 어떤 상태며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명확하게 알며(출세간 정견까지 확립), 자신의 수행(길)을 위해서는 더 이상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은 자(사띠로 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나는 자)다. 

수다원은 타자(특히, 현대 지식사회의 사람들)가 도과('자-나'가 아님)를 성취하도록 전법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만(그러나, 이 공덕 또는 공덕회향은 기본적인 '업과 과보의 법칙'에 따라 자신이 받을 괴로움의 과보를 줄이는 등의 결과로 이어지므로 위의 필요성에만 한정된 말임) 아비담마 등, 더 상세한 가르침을 더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다원은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고 성스런 길의 흐름에 든 자며, 수다원도 성자와 수다원과 성자의 차이는 아라한에 이르는 데 필요한 태어남 기한(최대 7번의 바와)의 확정여부다.

 

2023/01/04(수)

 

붓다 담마에서 사띠에는 세간(평범한) 삼마- 사띠와 출세간(성스런) 삼마- 사띠가 있으며, 두 가지 모두 다사 아꾸살라를 버리고 다사 꾸살라를 받아들이는 ‘아나빠나 사띠’의 의미다.

출세간(성스런) 삼마- 사띠에서만 꾸살라 물라 빠띳짜 사뭅빠-다가 일어나며,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에서 아라한과 또는 아나함과에 이르는 기간을 보증하신 것은 꾸살라 물라 빠띳짜 사뭅빠-다가 일어날 수 있는(출세간 삼마- 사띠로 마음이 열반을 향할 수 있는)  수다원 또는 사다함의 성자에게 보증하신 것이며, 세간 삼마- 사띠로 마음이 세상에만 향할 수 있는(꾸살라 물라 빠띳짜 사뭅빠-다가 일어날 수 없는) 범부 중생에게 보증하신 것이 아니다.

 

[참고: 다사 아꾸살라를 받아들이는 ‘밋차- 사띠’는 ‘사띠’라고 할 수 없다. 사띠는 ‘밋차- 딧티를 줄여 칭하는 딧티’와 반대 쓰임으로 ‘삼마- 사띠를 줄여 칭하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붓다 담마에서 사띠에는 세간(평범한) 삼마- 사띠와 출세간(성스런) 삼마- 사띠만 있다. 

한편, 더욱 엄밀히 말하여, ‘삼마-’라는 낱말의 어원(san을 제거)에 따르면, ‘세간 삼마- 사띠’라는 낱말도 잘못된 쓰임의 낱말이다. ‘삼마-’라는 말은 ‘san을 제거하는(san을 억누르는 것이 아님)’ 출세간(성스런) 길에서만 사용되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붓다 담마는 ‘세간 담마’가 아니라 원래 ‘출세간 담마’다( https://puredhamma.kr/dhamma-different-meanings-depe 참조). ]

 

2023/01/05(목)

 

죽을 때, 우리는 자신의 행위로 형성된 [역주: 형성되어 마노/나마 로까에 저장된] 업 씨앗(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만을 가져간다. 습관(gati, 가띠)들과 갈망(āsava, 아-사와)들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 이것들은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 (간답바, gandhabba)에 있고, 그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는 갱신된 업 씨앗으로 죽은 육체를 떠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여기 우리 삶의 ‘최종 결과’다.

출처: 아꾸살라ㅡ물라 웁빳띠 빠띳짜 사뭅빠-다,  https://puredhamma.kr/akusala-mula-uppatti-paticca-s 

 

2023/01/06(금)

 

기본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빚을 갚는 것과 탐욕으로 인해 들러붙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출처: 소개-2 ㅡ 괴로움의 세 가지 범주, https://puredhamma.kr/introduction-2-the-three-chara 

 

2023/01/07(토)

 

우리 행위의 결과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그것들은 언제든지 근본 원인(로바, 도사, 모하)과 지배적인 조건에 따른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자연의 법 집행 메커니즘(Nature’s law-enforcing mechanism)’이다.

출처: 소개-2 ㅡ 괴로움의 세 가지 범주, https://puredhamma.kr/introduction-2-the-three-chara 

 

2023/01/08(일)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은 우리가 감각 기능을 아-야따나(āyatana)로 사용할 때만 작동한다.

아라한(Arahant) 성자는 항상 자신의 감각 기능을 인드리야(indriya)로 사용한다. 아라한 성자는 우리와 똑같이 보고 듣지만, 아무 것에도 들러붙지 않는다.

출처: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 https://puredhamma.kr/namarupa-paccaya-salayatana 

 

2023/01/09(월)

 

들러붙는다(땅하-)는 것은 세상의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을 참으로는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여, 자신의 산가띠(sangati), 즉 들러붙는 가띠에 따라 세상의 어떤 것은 존재하여 즐기기를 갈망하고 세상의 어떤 것은 없어져 즐기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범천계에 태어나게 하는 세간 선정, 즉 아나리야 자-나를 즐기는 것도 아윗자-에 의한 들러붙음/땅하-로 인한 것이다.)

 

2023/01/10(화)

 

들러붙는다(땅하-)는 것은 세상이 형성되는(자신이 어떤 세상에 태어나는) 근본원인인 로바/도사/모하(악처 근본원인), 또는 띨락카나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세간 버전의 알로바/아도사/아모하(선처 근본원인)가 작용하여 무엇을 행하는 상태, 즉 ‘아비상카-라’ 상태다. 마노-/와찌/까-야 (아비)상카라 중에서 마노-(아비)상카-라는 산가띠에 따라 우리가 인식도 하지 못하고(인식되면 적어도 와찌 상카-라로 진행된 상태임) 자동으로 일어나는 상카-라로서, 웁빳띠 바와(재생연결시에 마노-마야 까-야로 형성되는 바와)가 되는 상카-라는 아니다.

 

2023/01/11(수)

 

6문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입력의 대상(아-람마나)에 대해 아뿐냐비상카-라(아뿐냐- 아꾸살라 행)를 통해 악처로 가는 깜마 윈냐-나를 일으키는 것보다 무관심(또는 무반응)하는 것이 유익하고, 무관심(또는 무반응)하는 것보다 ‘마음이 세상을 향하여 행하는 뿐냐비상카-라(뿐냐- 아꾸살라 행)’를 통해 선처로 가는 깜마 윈냐-나를 일으키는 것이 유익하며, 

이보다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 띨락카나(삼특상) / 사성제를 이해하는 성자에 이르러 마음이 열반을 향하여 행하는 꾸살라물라 상카-라(뿐냐- 꾸살라 행)를 통해 열반으로 가는 ‘꾸살라물라 윈냐-나’를 일으키는 것이 유익하다. 아라한의 끼리야 행은 아꾸살라 행도 아니고 꾸살라 행도 아닌 ‘뿐냐- 끼리야 행’이다.

 

2023/01/12(목)

 

수행한다는 것은 (삼마-) 사띠로 행한다는 것이고, (삼마-) 사띠로 행한다는 것은 (삼마-) 딧티를 바탕으로 다사 아꾸살라를 버리고 다사 꾸살라를 받아들여 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부중생(뿌툿자노)들이 다사 아꾸살라를 버리고 다사 꾸살라를 받아들여 수행한다는 것과 유학성자(섹카)들이 다사 아꾸살라를 버리고 다사 꾸살라를 받아들여 수행한다는 것은 마음의 지향도 다르고 실행 연기와 작용 방식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2023/01/13(금)

 

범부중생(뿌툿자노)들이 수행한다는 것은 연기/삼특상/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윗자로 시작하는 아꾸살라 물라 연기가 실행되면서, 세상것이 실속/결실/가치가 있다는 견해로 마음이 세상을 향하여 다사 아꾸살라를 버리고 다사 꾸살라를 받아들여 행함에 따라 선처에 태어나는 업 씨앗을 형성하는 것(뿐냐- 깜마를 짓는 것)이다.

유학성자(섹카)들이 수행한다는 것은 연기/삼특상/사성제를 이해하는 빤냐-가 작용하여 꾸살라물라로 시작하는 꾸살라 물라 연기가 실행되면서, 세상것이 실속/결실/가치가 없다는 견해로 마음이 닙바-나를 향하여 다사 아꾸살라를 버리고 다사 꾸살라를 받아들어 행함에 따라 열반에 다가가는 업 씨앗을 형성하는 것(깜막까야-야 깜마, 일명 꾸살라 깜마, 즉 깜마 위빠-까를 무효화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깜마를 짓는 것)이다.

 

2023/01/14(토)

 

비물질계의 담마-도 업에너지 상태의 루-빠다.

따라서, 세상에 들러붙는다는 것은 마노마야 까-야에서 일어나는 깜마 윈냐-나가 내부루-빠(정신적 몸인 마노마야 까-야와 물질적 몸인 아하라자 까-야의 루-빠)와 외부루-빠(물질계와 비물질계의 루-빠)에 들러붙는다는 것이다. 붓다 담마에서 참된 수행은 유학성자(섹카)가 꾸살라물라 연기의 꾸살라물라  윈냐-나를 일어나게  (삼마-)사띠로 행하는 것이다.

 

(참고: 범부 중생은 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날 수 없으므로 붓다 담마에서 말하는 참된 의미의 수행을  할 수 없다. 퓨어 담마의 목적은 범부중생이 올바른 출세간의 정견의 확립으로 붓다 담마에서 말하는 참된 의미의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최소한 수다원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올바른 출세간 정견이 확립된다는 것은 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사성제가 올바르게 이해되어 자리잡는 것이다.)

 

2023/01/15(일)

 

모든 것은 이유(원인)로 인해 발생한다. 좋은 행위를 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 이것은 과학의 기초이자 자연이 작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모든 행위(작용)에는 반응(반작용)이 있다.”  머지않아 그 반응(반작용)은 확실하다.

이것이 재탄생은 자연의 실상(실제)인 이유다. 어떤 사람들은 부도덕한 행위로 번 돈으로 사치스럽게 산다. 그들은 미래의 재탄생에서 그 결과(괴로움)를 겪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왜 사람마다 다른 수준의 건강, 부, 아름다움 등으로 태어나는지, 그리고 왜 고통/시달림의 정도가 다른 무수한 종류의 동물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들은 모두 전생에 행해진 나쁜 행위의 결과다.

출처: 소개-2 ㅡ 괴로움의 세 가지 범주, https://puredhamma.kr/introduction-2-the-three-chara 

 

2023/01/16(월)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과정은 누가 (아비)상카-라를 행하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결과는 어떤 종류의 상카-라(saṅkhāra)가 관련되어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 상카-라(saṅkhāra)의 생성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즉 (아누사야, 아-사와, 가띠 등과 관련된) 자신의 갈망/바램/기대와 연관되어 있다. 결과는 행위에 따른 것이다. 특정 유형의 행위(상카-라를 통한 깜마)를 하면 결실(깜마 위빠-까, kamma vipāka)로 이어진다.

출처: ‘나’ 및 ‘내 것’ ㅡ 고통(괴로움)의 근본 원인, https://puredhamma.kr/me-and-mine-the-root-cause-of- 

 

2023/01/17(화)

 

아닛짜(anicca)의 원인은 ‘무상(impermanence)’과 관련이 있지만, 아닛짜(anicca)는 길러져야 할 인식을 의미한다. 

출처: 잇짜, 닛짜, 아닛짜 ㅡ 중요한 관계, https://puredhamma.kr/icca-nicca-anicca-important-c 

 

2023/01/18(수)

 

<그릇된 견해로 인한 (아비)상카-라>

다른 9가지 아꾸살라 깜마를 일으키므로 가장 중요한 그릇된 견해(밋차- 딧티)가 있다.

그릇된 견해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그것을 지니거나 그것에 따라 말/행동하는 것의 위험함을 모르는 상태가 있다(모하 또는 아윗자- 상태).

그릇된 견해를 지니는 상태가 있다(마노- 상카-라 상태).

그릇된 견해에 따라 말/행동하는 상태가 있다(와찌/까-야 상카-라 상태).

 

2023/01/19(목)

 

꿈은 자신의 아사와(또는 아누사야) 제거상태, 즉 도과 성취여부를 판단해 볼 수 있는 좋은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꿈에서는 오문이 닫히고 의문(마노드와라)만 열린(작용하는) 상태이므로 아사와가 눌려져 일어나지 않는 상태인지 제거되어 일어나지  않는 상태인지를 잘 알려주기 때문이다.

꿈에서 어떤 상황에 대한 대응 행위(의도행)는 업행을 실제로 행하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 의도행은 깨어 있는 상황에서 인식될 수 없는 자동적 마노- 상카- 라 단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꿈에서 사악처에 떨어지는 의도행(대응행)이 일어날 때가 있다면 수다원도 또는 수다원과가 성취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꿈에서 욕계에 머무르는 의도행(대응행)이 일어날 때가 있다면 아나함도 또는 아나함과가 성취되었다고 할 수 없다.

 

[참고: 그러나, (아나리야) 자-나가 성취되어 그 마음이 유지될 경우(즉, 일상 중에 로끼야 삼마 사마디로 생활하는 상태)에는 꿈에서 그 (브라흐마/범천) 영역에 태어나는 상태라고 볼 수 있으므로 사악처에 떨어지는 의도행이나 욕계에 머무르는 의도행이 꿈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으므로 도과 성취 여부를 꿈 속의 의도행으로 알(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체적 뇌가 없거나 육체적 뇌가 발달하지 못한 모든 다른 영역의 유정체(하계에 있는 인간 간답바  및 동물 간답바 포함)는 (우리와 같은 뇌의 육체를 가진) 인간처럼 꿈을 꿀 수는 없을 것 같으며,  이점에서도 인간은 다른 영역의 존재와는 확실히 다르며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23/01/20(금)

 

유정체와 다른 모든 것(식물을 포함하여, 바위, 집, 행성, 별 등) 사이의 차이는 유정체는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모든 물질적 개체(유정체의 육체를 포함)는 4대 요소(‘빠타위-_pathavī’, ‘아-뽀_āpo’, ‘떼조_tejo’, ‘와-요_vāyo’)로 이루어지며, 공간(아-까-사, ākāsa)의 특정 위치에 있다.

그러나,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에는 그런 공간 위치가 없다. 그것은 전체 공간에 스며들어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모든 유정체가 접근할 수 있다.

출처: 미래 괴로움(로까/둑카 사무다야)은 감각 입력(아-람마나)으로 시작된다. https://puredhamma.kr/future-suffering-starts-with-s 

 

2023/01/21(토)

 

세상(윤회/연기)에서는 결국 만족될 수가 없는데, 세상(윤회/연기)에서 만족하고 만족하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갈애며 세상에 들러붙는 것이며 사성제/연기/삼특상을 모르는 무지며, 이 무지 또는 갈애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꾸살라 물라 연기에서 형성되는 아비상카-라다.

 

2023/01/22(일)

 

어떤 종류의 바와(bhava)를 얻는지는 우리의 좋아함/기대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 깜마(kamma) 때문이며, 웁빳띠(uppatti) PS 과정에 의해 결정지어진다. 그것이 아닛짜(anicca)가 의미하는 것이다.

출처: 팟사(접촉) ㅡ 빠사-다 루-빠와의 접촉, https://puredhamma.kr/phassa-contact-with-pasada-rup

 

2023/01/23(월)

 

우리는 새로운 감각 입력으로 인한 찟따 위티(citta vithi)가 처음에 일어나는 방식을 통제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두 가지, 즉 특정 아-람마나(ārammaṇa, 감각 대상)와 각자의 습관/성격 (가띠, gati)에 따라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출처: 찟따 위티 ㅡ 기본 감각단위, https://puredhamma.kr/citta-vithi-fundamental-sensor 

 

2023/01/24(화)

 

<욕계 유정체에서 다섯가지 감각 기능(빠사다 루빠)의 작용>

욕계의 유정체는 다섯가지 감각 기능(다섯가지 빠사다 루빠)이 있으므로 마노마야 까야의 세팅 상태(웁빳띠 바와)에 따라 오감을 모두 느낀다.

욕계 유정체 중의 인간과 동물은 다섯가지 감각기능 중의 세가지(맛, 냄새, 신체접촉)는 육체가 형성되어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하계에 있는 인간 간답바나 동물 간답바는 범천과 같이 보고 듣는 두 가지 감각만 느끼는데, 빠사따 루빠로 맛/냄새/신체접촉을 하기로 세팅되어 있지만 세가지를 느끼지 못함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욕계 유정체 중의 천신은 다섯가지 감각기능(빠사다 루빠)이 즐거움을 느끼기에(즐거움의 과보를 받기에) 적합한 상태로 세팅되어 있고, 욕계 유정체 중의 지옥/아귀/아수라는 다섯가지 감각기능(빠사다 루빠)이 괴로움을 느끼기에(괴로움의 과보를 받기에) 적합한 상태로 세팅되어 있다. 

 

2023/01/25(수)

 

단일 찟따(citta)가 개별로 분리되어 일어나지는 않는다. 찟따(citta)는 항상 찟따 위티(citta vithi, ‘찟따-’의 시리즈)로 일어나며, 일부 ‘찟따 위티’는 17개의 찟따(cittā)로 일어난다. 1 초에 수십억 개의 그런 찟따 위티(citta vithi)가 마음을 통해 흐를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수십억 개의 그런 찟따 위티(citta vithi)의 누적 효과다.

출처: 찟따 위티 ㅡ 기본 감각단위, https://puredhamma.kr/citta-vithi-fundamental-sensor 

 

2023/01/26(목)

 

각자의 세상은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을 때 인간 바와(human bhava)에 업 에너지가 더 남아 있으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새로운 바와(bhava)를 붙잡고, (31영역 중) 그 적합한 영역에 재탄생하게 된다. 그것이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 세상의 기원/발생)’다.

‘세상(세계)의 그침’(재탄생 과정이 멈춤)’은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서 일어나고, 그 아라한은 빠리닙바-나(Parinibbana, 육체의 죽음)시에 ‘이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출처: 미래 괴로움(로까/둑카 사무다야)은 감각 입력(아-람마나)으로 시작된다. https://puredhamma.kr/future-suffering-starts-with-s 

 

2023/01/27(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일상의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집중 명상 수행에 참여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훨씬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그 문제는 붓다께서 가르치신 ‘광대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는 불가피하게 재탄생 과정에서 겪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고통)이다.

출처: 소따빤나 ㅡ 붓다의 ‘광대 세계관’을 가진 자, https://puredhamma.kr/sotapanna-one-with-the-wider-w 

 

2023/01/28(토)

 

‘새로운 태어남으로 새로운 세계가 생긴다’는 것은 ‘또 다른 괴로움(고통) 덩어리가 생긴다’는 것과 동일하다.

~

 ‘새로운 세계(새로운 탄생)의 일어남이 멈추는 것’은 ‘또 다른 한 바탕 괴로움의 일어남이 멈추는 것’과 같다.

출처: 미래 괴로움(로까/둑카 사무다야)은 감각 입력(아-람마나)으로 시작된다. https://puredhamma.kr/future-suffering-starts-with-s 

 

2023/01/29(일)

 

괴로움과 감각적 즐거움은 모두 31 영역의 세상, 즉 31 영역 중에 재탄생하는 과정에 있다. 상위 영역에서는 괴로움보다 행복함이 더 많은 반면, 하위 4가지 영역(사악처)에서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고통)이 있다. 주어진 유정체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서 보내기 때문에 고통(괴로움)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

닙바-나(열반)(아라한의 죽음 후)에는 괴로움이나 감각적 즐거움이 없다. 닙바-나에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 언어로 말하면, ‘이 세상과 닙바-나(열반)는 상호 배타적이다.’ 물질적 대상과, 그것들에 대한 느낌과 인식 등은 모두 이 세상에 속하며, 닙바-나에는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 소따빤나 ㅡ 붓다의 ‘광대 세계관’을 가진 자, https://puredhamma.kr/sotapanna-one-with-the-wider-w 

 

2023/01/30(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단계적 과정이다. 소따빤나(Sotapanna)조차도 ‘이 세상’에 들러붙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라한의 특성(마음성향)이 소따빤나에게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감각적 욕망을 억누르는 노력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나’ 또는 ‘자아(self)’라는 타고난 감각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목표는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먼저 소따빤나(Sotapanna)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포스트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어떤 사람들은 또한 ‘호흡 명상’으로 아나빠나사띠/삿띠빳타나를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 오직 소따빤나(Sotapanna)만이 그것들을 제대로 기르는 법을 알고 있다.

출처: 소따빤나 ㅡ 단지 성스런 길을 가기 시작함, https://puredhamma.kr/sotapanna-just-starting-on-the 

 

2023/01/31(화)

 

우리 모두는 친구와 가족 속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실상(현실)은 아무도 그것을 결코 유지/지속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살았던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어디에 다시 태어날지조차 모른다.

 [죽고 나서] 몇 년 후에, 이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 에너지가 더 남아 있으면, 우리는 인간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정신적 몸’, 즉 ‘간답바 까-야(gandhabba kāya)’만 가질 것이다. 물론, 그때에도 우리는 어디에 태어날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 에너지가 더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디에 재탄생[바와의 변경]할지 전혀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현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전생에 어떤 종류의 업 에너지를 축적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출처: 소따빤나 ㅡ 붓다의 ‘광대 세계관’을 가진 자, https://puredhamma.kr/sotapanna-one-with-the-wider-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