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Dhamma 공부/PD 관련 포스트

2022년 12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2. 12. 31. 07:58

2022년 12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2/12/01(목)

 

아낫따(anatta)는 이 세상의 특성이지 '자아(self)'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무상(impermanence)은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닛짜(anicca)의 의미를 완전히 묘사하는(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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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그리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잘못 번역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졌다. 이것은 논의되고 해결되어야 할 심각한 문제다.

 ~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오역한 것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잘못된 번역으로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출처: 아닛짜와 아낫따 ㅡ 세상의 두 가지 특성

https://puredhamma.kr/anicca-anatta-two-characterist 

 

2022/12/02(금)

 

누가 잘못된 (붓다) 담마를 전하고 있는지 쉽게 식별할 수 있다. 필자(Lal)의 주된 평가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아나빠나 사띠(anapanasati)를 호흡 명상(breath meditation)으로 분류(표시)하고 있는지 여부

2)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해석하고(알고) 있는지 여부

출처: 포럼 포스트 #35517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is-this-monk-a-true-arahant/#post-35517 

 

[역주: 퓨어 담마에서 위 두 가지 기준은 도과 성취여부의 1차적(기본적) 판단 기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대한 인식이 퓨어 담마의 설명과 어긋나면, 다른 것은 더 생각(평가)해 볼 필요가 없이 수다원도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022/12/03(토)

 

짯따-로 사띠빳타-나(Cattāro Satipaṭṭhāna, 사념처)는 ~ 몸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을 부단히 경계하여(까-야-누빳사나-, Kāyānupassanā), 느낌이나 생각에 자동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잘 되도록 하고(웨다나-누빳사나-_vedanānupassanā 및 찟따-누빳사나-_cittānupassanā), 그리고 하려고 하는 주어진 행위가 적당한지 의심스러울 때, 담마(가르침)에 있는 것과 비교하는 것이다(담마-누빳사나-, dhammānupassanā).

출처: 2가지 종류(버전)의 37조도품, https://puredhamma.quv.kr/50 

 

2022/12/04(일)

 

한 존재(bhava, 바와)에서 다른 존재로 전환은 웁빳띠 PS(uppatti PS) 과정에서 일어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그 웁빳띠 PS(uppatti PS) 사이클의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단계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새로운 존재(바와, bhava)의 원인이 되는 것은 PS(연기)의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 단계를 통해 생성된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ṇa)다.

출처: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https://puredhamma.kr/origin-of-life-one-creates-o 

 

2022/12/05(월)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ṇa)에 내재된 업 에너지는 새로운 존재(bhava, 바와)인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를 생성하는 에너지다. 따라서,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는 마음이 만든 아주 미소한 에너지만 있다.

그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는 그 바와(bhava)가 끝날 때까지 죽지 않는다. 각각의 모든 영역에 있는 유정체들은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를 가진다.

출처: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https://puredhamma.kr/origin-of-life-one-creates-o 

 

2022/12/06(화)

 

인간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첫째 형태: 인간 바와(human bhava)에서 많은 시간을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로서만 머무른다. 그 상태를 보통 간답바 상태라고 한다. 간답바(gandhabba)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브라흐마(Brahma, 범천)와 같다. 간답바(gandhabba)는 물질적 눈과 물질적 귀의 도움이 없이도 보고 들을 수 있다. 비록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가 있지만, 조밀한 물질적 몸이 없기 때문에 감촉하거나 맛 보거나 냄새 맡을 수 없다.

둘째 형태: 인간은 간답바(gandhabba), 즉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가 자궁에 들어가 물질적 인간 몸을 만든 후에만 ‘조밀한 물질적 몸(육체)’을 갖게 된다.

출처: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https://puredhamma.kr/origin-of-life-one-creates-o 

 

2022/12/07(수)

 

<자신들의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는다고 고통/괴로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토론 포럼에서 인용해보면 “태어남과 죽음은 자아(self)에 대한 견해일 뿐이다”는 것이다. 이 유형의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을 때’[역주: 궁지에 몰린 타조들의 행동양식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현실을 외면할 때’의 의미임], 즉 특정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척함으로써 특정 상황을 피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출처: 둑카 특성을 지닌 것에 들러붙으면 둑카로 이어진다

https://puredhamma.kr/attachment-to-things-with-dukk

 

2022/12/08(목)

 

<틸락카나와 다사 아꾸살라 사이의 결정적 연결 관계>

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3가지 특성)는 이론적인 면(세상의 본래 모습, 특질)을 나타내고,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는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둘 사이의 연결이 중요하다.

~

아낫따(anatta)는 자아(self)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나(me)’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와 관련되어 있다.

아낫따(anatta)는 그 핵심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행함으로 인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난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닙바나(Nibbana, 열반)에 이르는 것은 그 핵심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피하는 것, 즉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출처: 다사 아꾸살라와 아낫따 - 결정적 연결 https://puredhamma.quv.kr/44 

 

댓글) 

오늘 한두줄 메모장의 글에는 붓다 담마의 공부(이론)과 그에 따른 수행(실천)이 연결되어 붓다 담마의 전체적 핵심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포스트도 통독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22/12/09(금)

 

인간계가 독특하다는 또 다른 미묘한 이유는 인간계에 있는 동안 각자의 미래 운명이 대부분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31가지 영역에 나타나는 89가지 유형의 찟따’가 모두 일어날 수 있는 독특한 유정체다. 더욱이, 사람은 미래 존재(바와, bhava)를 위한 깜마 비-자(kamma beeja, 업 씨앗)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모든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를 생성할 수 있다.

이 아이디어(개념)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비유가 있다. 인간계는 훈련 학교에 비유될 수 있고, 다른 영역은 훈련을 마치면 각자의 자격에 따라 고용되는 곳에 비유될 수 있다.

출처: 큰 그림에서 닙바-나  https://puredhamma.quv.kr/156 

 

댓글)

인간계의 독특함(귀중한 시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것을 출처의 포스트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22/12/10(토)

 

핵심은 그 세 가지(‘잇차-_icchā’, ‘땅하-_taṇhā’, ‘까-마_kāma’)는 의지력이나 (의례)의식으로 직접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왜 잇차-(icchā), 땅하-(taṇhā), 까-마(kāma)가 괴로움을 일으키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팔정도에서 첫 번째 단계이며, 바로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다.

그것이 이해되면,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성스런 길을 따라가게 된다. 먼저, 그에 맞게 생각한다(삼마 상깝빠, Sammā Saṅkappa). 그 다음 나머지도 뒤따르게 된다. 즉 그 마음가짐으로(삼마- 사띠, Sammā Sati), 말하고(삼마- 와-짜-, Sammā Vācā), 행동하고(삼마- 깜만따, Sammā Kammanta), 노력하고(삼마- 와-야-마, Sammā Vāyāma), 살게(삼마- 아-지와, Sammā Ājiva)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에 도달하게 된다.

잇차-(icchā), 땅하-(taṇhā), 및 까-마(kāma)에 숨겨진 괴로움을 이해하는 두 가지 설명 방식이 있다. 하나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띨락카나(Tiakkhana)를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그 두 가지 방식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출처: 잇차-, 땅하-, 까-마 ㅡ 괴로움의 근본 원인 https://puredhamma.kr/iccha-tanha-kama-root-causes-o 

 

2022/12/11(일)

 

‘괴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데, 괴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정말로 없는가?

‘괴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즐거움/평온함을 추구하는 그것이 결국 괴로움에 이르게 되므로 그것(세상에서 즐거움/평온함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세상에서 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세상의 즐거움/평온함을 추구하는 그것이 다시 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세상의) 즐거움/평온함을 추구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세상의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닛짜/수카/앗따를 구하며 살고 있는 것이며, 자신은 그 사실(괴로움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괴로움을 추구하는 삶(윤회의 삶)이다.

 

2022/12/12(월)

 

사냥과 낚시는 삼가야 할 부도덕한 활동이다. 그런 활동은 ‘스포츠 활동’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져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그런 활동에 참여한다. 그런 활동은 붓다 담마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유정체/중생을 해치는) ‘위힝사-(vihiṃsā)’ 범주에 속한다.

위힝사-(vihiṃsā)는 브야-빠다(vyāpāda)와는 다르다. 브야-빠다(vyāpāda)로, 사람은 분노/증오하면서 부도덕한 행위를 한다. 위힝사-(vihiṃsā)로 하는 행위는 아윗자-(avijjā)로 행해진다.

출처: 잇차-, 땅하-, 까-마 ㅡ 괴로움의 근본 원인 https://puredhamma.kr/iccha-tanha-kama-root-causes-o 

 

2022/12/13(화)

 

[동일한] 인간 바와(human bhava) 중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jāti) 때는 비슷한 특성을 가진다. 부모의 모습이 접합자(zygote, 수정란)를 통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물질적 외모는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 유정체의 이어지는 삶은 보통 비슷한 가띠(gati)를 가지며, 태어나는 곳(출생지)이 가까운 경향이 있다.

출처: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https://puredhamma.kr/origin-of-life-one-creates-o 

 

2022/12/14(수)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가 (새로운 바와를 움켜잡는 쭈띠-빠띠산디 순간에) 태어날 때, 다음과 같은 놀랍도록 작은 ‘센서들’이 업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것들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마음 자리)와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 cakkhu, sōta, ghāna, jivhā, kāya)다. 물론, 가-나(ghāna), 지와-(jivhā), 및 까-야(kāya)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는 냄새, 맛, 및 감촉을 위한 물질적 몸(육체)으로부터 신호를 받아야 기능(작용)한다.

출처: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https://puredhamma.kr/origin-of-life-one-creates-o

 

2022/12/15(목)

 

짝쿠(cakkhu)와 소-따(sōta)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는 [육체적] 눈과 귀의 도움 없이도 형색과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는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체(개체)’다. 소-따 빠사-다 루-빠(sōta pasāda rūpa)는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체(개체)’다.

출처: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https://puredhamma.kr/origin-of-life-one-creates-o

 

2022/12/16(금)

 

우리는 감촉하고(성관계 포함) 맛보고 냄새맡을 수 있기 위해서는 물질적 몸(육체)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질적 몸(육체)에는 그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암, 몸 통증, 신체 부위의 노화 등 온갖 질병을 견뎌야 한다. 브라흐마(Brahma)들과 데-와(Deva)들은 그런 질병을 겪지 않지만, 물론 죽음은 모두에게 불가피하다.

출처: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https://puredhamma.kr/origin-of-life-one-creates-o 

 

2022/12/17(토)

 

붓다 담마(불교)는 단순한 믿음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가 물질 세계에 대한 자연법칙을 이해/검증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과 같이, (괴로움에 벗어나려면) 물질과 정신 세계에 대한 통합 자연법칙을 이해/검증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못한다고 하는 재탄생(윤회)에 대한 검증은  ‘재탄생(윤회)의 증거’ 포스트에 있는 것과 같이 검증되고 있다.

정신 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검증은 삼장을 통해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모순없고 일관된 붓다 담마의 이론적 설명으로 가능하며, 붓다 담마의 이론은 추측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붓다의 순수 마음에 의한 체험적 사실(진실)에 의한 이론이다.

 

2022/12/18(일)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도 ‘자아(self)’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삭까-야 딧티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는 ‘나(me)’ 또는 ‘내 것(mine)’이 될 수 있거나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궁극적인 실재에서 영속적인 ‘영혼’도 없고 ‘나(me)’ 또는 ‘나(I)’도 없다. 그러나 ‘나(me)’에 대한 인식(산냐-_saññā)은 오로지 아라한(Arahant) 단계에서만 사라진다.

출처: 다사 아꾸살라와 아낫따 - 결정적 연결 https://puredhamma.quv.kr/44 

 

2022/12/19(월)

 

잇차-(icchā)(좋아함/바람) 때문에, 우리는 들러붙게 된다(taṇhā, 땅하-). 재탄생된 존재로 이끄는 것은 이 들러붙음(taṇhā, 땅하-)이다. 그 땅하-(taṇhā)는 바로 이 세상의 즐거운 것들에 대한 땅하-(까-마 땅하-, kāma taṇhā), (재탄생을 믿는 자들이) 계속 존재하고자 하는 땅하-(즉, 바와 땅하-, bhava taṇhā), (재탄생을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생이 지속되는 동안 즐거움을 최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땅하-(즉, 위바와 땅하-, vibhava taṇhā)다.

여기서, 까-마 땅하-(kāma taṇhā)는 바와 땅하-(bhava taṇhā)와 위바와 땅하-(vibhava taṇhā)를 지닌 두 그룹에 공통적이다.

출처: 잇차-, 땅하-, 까-마 ㅡ 괴로움의 근본 원인 https://puredhamma.kr/iccha-tanha-kama-root-causes-o 

 

2022/12/20(화)

 

성자는 세상의 위험함을 알고(즉, 세상을 바르게 알고)  출세간 정견의 확립 정도에 따라 세상에 태어나는 행위(업행)을 하지 않는 자다.

구체적으로, 수다원은 사악처의 위험함을 아는 출세간 정견의 확립으로, 사다함은 인간계 이하의 위험함을 아는 출세간 정견의 확립으로, 아나함은 욕계 세상의 위험함을 아는 출세간 정견의 확립으로, 아라한은 31계 전세상의  위험함을 아는 출세간 정견의 확립으로, 그 세상에 태어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자다.

이에 반해, 범부중생은 출세간 정견이 전혀 확립되지 못한 상태로 사견 또는 세간 정견에 따라, 그 세상 자체를 모르거나 그  세상(또는 그 행위)의 위험함을 모르고 그 세상에 태어나는 행위를 하는 자다.

 

2022/12/21(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완전히 이해하면(즉, 아라한이 될 때), 뿐냐-비 상카-라(puññābhi sankhāra)는 업적 결과(과보)가 없는 뿐냐 끼리야-(puñña kriyā)로 바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기대도 없이 자비로운 행동을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윈냐-나 니로-도(vinññāna nirōdha)’를 의미한다.

출처: ‘상카-라’로 행해진 깜마 ㅡ ‘상카-라’의 유형 https://puredhamma.quv.kr/26 

 

2022/12/22(목)

 

강제적으로 어둠을 제거할 수는 없다. 어둠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붓다께서는 지혜를 계발함으로써 무명이 제거될 수 있다고 설명하셨다.

다른 그 무엇을 하더라도 아윗자(avijja, 무명)는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담마를 배워서 지혜를 키워야 한다. 먼저, 도덕적인 것을 비도덕적인 것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키우고, 그 다음에 세상의 진정한 본질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한다.

출처: 아윗자’란 무엇인가? https://puredhamma.kr/what-is-avijja 

 

2022/12/23(금)

 

자신이 인식하는 모든 대상(유정체, 무정체, 사건/일, 생각)은 처음에 자신의 위빠-까(과보)로 받는(일어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처음에 인식하는 모든 것은 위빠-까 윈냐-나로 인식하는 것이며, 이 위빠-까 윈냐-나는 과보로 받은 마노마야 까야의 빠사다 루빠 및 하다야 왓투로 인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하다야 왓투를 받지 않았고 빠사다 루빠를 받지 않았다면 마노마야 까야가 생기지 않았고, 마노마야 까야가 생기지 않았다면 위빠-까 윈냐-나가 일어날 수 없고, 위빠-까 윈냐-나가 일어날 수 없다면 과보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22/12/24(토)

 

청정한 마음은 항상 마음을 챙기고 명상의 세 가지 매우 중요한 단계를 따름으로써 달성된다. 

(1) 나쁜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를 멈추고, (2) 좋은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를 기르고, (3)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성제(네 가지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는 것이다.

출처: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https://puredhamma.kr/sankhara-what-it-really-means 

 

2022/12/25(일)

 

그대의 생각(와찌 상카-라, vaci saṅkhāra)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말(더 강한 와찌 상카-라)이 된다.

그대의 말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행동(까-야 상카-라, kāya saṅkhāra)이 된다.

그대의 행동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습관(가띠, gati)이 된다.

그대의 습관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그대의 성향(더 강한 가띠)이 된다.

그대의 성향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이 그대의 운명(미래 탄생)이 된다.

출처: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https://puredhamma.kr/sankhara-what-it-really-means 

 

2022/12/26(월)

 

닙빠-나(Nibbāna)는 제시한 대로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와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nkhāra)를 모두 삼가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닙빠-나(Nibbāna)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상카-라에 대한 진정한 성품, 즉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a)와 아낫따(anatta)를 이해하기 위해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를 행하고 담마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마음의 청정에 이르게 한다.

근본적으로 볼 때, 단지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 공덕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그곳에서 시작해야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a)와 아낫따(anatta)를 이해할 수 있다.

출처: 상카-라, 삶은 상카-라의 꾸러미 https://puredhamma.quv.kr/24 

 

2022/12/27(화)

 

아라한이 대상에 들러붙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무엇을 해도 탐진치로 행하지 않고 그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도 탐진치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모든 범부 중생은 물론이고 출세간 정견으로 대상에서 떨어지는 사띠하지 않을 때의 유학성자는 그 대상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무관심할 때 조차도 그 대상에 대한 아윗자가 작용하여 들러붙기에 사견(범부 중생만) 또는 세간 정견(범부 중생 및 유학성자)에 의한 어떤 판단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된다.

 

2022/12/28(수)

 

“닙바-나(Nibbāna, 열반)에 이르지 않고, 여행하여 ‘세상의 끝’에 이를 수는 없다. (재탄생과 관련된) 고통/괴로움이 끝날 때까지, 자신은 ‘이 세상의 끝’에 이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의 일어남과 그침과 이 그침에 이르는 (실천) 수행을 선언/표명하는 것은 그것이 시시각각 일어나는 것으로 제한된 인식과 마음이 있는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āya)가 있는 이 육체에 있기 때문이다.”

출처: 붓다께서 의미하신 ‘로까’는 무엇인가?,  https://puredhamma.kr/what-did-the-buddha-mean-by-l 

 

2022/12/29(목)

 

보통 사람은 ‘돈을 벌고 집, 자동차 등과 같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얻기 위해’ 애씀으로써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닛짜 견해/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 시야(범위)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후 세계가 없다고 믿는다. 재탄생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생(현생)을 살기에 너무 바쁘다. 그 두 그룹 모두 ‘삶이 지속되는 동안 삶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우리가 다시 태어날 것이며 미래 존재의 대부분은 ‘많은 고통/괴로움으로 가득할 것’이 확실하다고 가리켜 보이셨다. 그것은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오늘날 살고 있는 가장 도덕적인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출처: 미래 괴로움(로까/둑카 사무다야)은 감각 입력(아-람마나)으로 시작된다. https://puredhamma.kr/future-suffering-starts-with-s 

 

2022/12/30(목)

 

올바른 견해(세간 정견 및 출세간 정견)가 확립되는 것이 우선이지만, 출세간 정견까지 확립되어 최소한 수다원도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물질(루빠)에 대한 집착을 우선 줄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그 집착 중에서도 냄새/맛/감촉에 대한 집착을 우선 줄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육체적 몸에 의한 실제적 느낌을 우선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신적 몸보다 육체적 몸에 대한 집착을 우선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며, 유물론적 사고방식에서 우선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2/12/31(금)

 

참된 붓다 담마를 공부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세상 것의 특성을 올바르게 알고 세상 것에 대해 즐기지 않는 실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 가치를 두며 즐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항상 붓다 담마는 왜곡되며 오염될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참된 붓다 담마는 얼마 동안 드러나 있다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참된 붓다 담마가 드러나는 기간은 윤회의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찰나에 불과하며, 이 찰나 동안만 드러나는 참된 붓다 담마를 접하여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는 유정체(특히 인간)로 태어나는 것이 극히 희귀한 기회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