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Dhamma 공부/PD 관련 포스트

2023년 1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3. 11. 30. 04:26

 

2023년 1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3/11/01(수)

 

세상/세상것을 기대(갈망)해도 좋으니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관리하라고 하는 것은 짐을 져도 좋으니 무게를 느끼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기대(갈망)의 뿌리는 그대로 나두고 정신적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사마타 수행 및 세상의 일반적 치유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일시적 해결책일 뿐이며, 이것이 아꾸살라 물라 연기가 작용하는 상태다.

~

그러므로, 범부 중생들이 우선 관심/집중해야하고 공부/수행해야 하는 것은 일시적 해결책을 위한 사마타 수행 또는 세상의 일반적 치유프로그램이 아니라, 영구적 해결책을 위한 닷사나 빠하땁빠, 즉 세간 정견(출세간 정견의 기초) 및 출세간 정견의 확립이다.

출처: https://cafe.naver.com/puredhamma/1497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2503137587 

 

2023/11/02(목)

 

현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붓다 재세시에 붓다 문하에서 담마를 배워 다른 빅쿠들을 잘 가르쳐서 빅쿠들의 존경을 받았던 뽀띨라 장로도 그 당시에 수다원의 도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마나(mana,자만)라는 족쇄가 너무 강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가장 먼저 끊어져야 하는 삭까야 딧티가 제거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견해가 제거되었다는 것은 다른 족쇄도 잘못된 견해가 제거될 수 있도록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표현한 것이 '수다원이 되면 로바/도사/모하가 라가/빠띠가/아윗자 수준으로 감소되었다'고 하는 것이며, 단순히 삭까야 딧티와 위찌낏짜와 실랍바따 빠라맛사만 제거된 것이 아닌 것이다. 

 

2023/11/03(금)

 

유신견(삭까-야 딧티)이 제거되었다고 하여, 아라한이 되어서야 완전히 제거되는 ‘나’와 관련된 왜곡된 인식(산냐 위빨라-사)과 왜곡된 생각(찟따 위빨라-사)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오취온(빤쭈빠-다-낙칸다)의 견해’가 제거되었다고 하여, 아라한이 되어서야 완전히 제거되는 오취온(빤쭈빠-다-낙칸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오온에 집착하는 견해, 즉 ‘오취온의 견해’가 ‘삭까-야 딧티’라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  

참고 포스트: ‘제1성제의 둑카와 오취온과의 관계’ ( https://cafe.naver.com/puredhamma/2305 또는 https://blog.naver.com/hojanyun/223041978786 )

 

2023/11/04(토)

 

닙바-나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닙바-나를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과 혼동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은 반드시 태어남이 있는 상태(연기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에 반해 붓다 담마에서 말하는 닙바-나는 태어남이 없는 상태(연기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닙바-나는 형성되지 않는 상태(태어나지 않는 상태)로 정의된다. 그래서, 소멸로 정의된 닙바-나를 보면 붓다 담마를 많이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닙바-나를 오해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PS)

그러나, 닙바-나에 이르는 수행을 위해서는 번뇌의 소멸로 정의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즉, 라-각카요, 도-삭카요, 및 모-학카요가 닙바-나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행하기 위해서는(또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그 수행을 위한(또는 살아있기 위한) 유익한(소바나) 것들은 일어나야 하며, 해로운(아소바나) 것들만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2023/11/05(일)

 

어떤 존재가 있다/없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상태가 있으며, 이 두 가지 상태는 상호 배타적이다(연기에서 보통 '존재'로 번역되고 있는 '바와'는 아래의 '연기하는 상태'에 속한다).

연기하는 상태(조건지어진 상태, 형성/유지/소멸되는 상태)와 연기하지 않는 상태(조건지어지지 않은 상태, 형성/유지/소멸되지 않는 상태)가 있다.

연기하는 상태는 아비담마의 궁극 요소인 찟따와 쩨따시까와 루-빠의 작용 상태를 말하며,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 상태며, 이것을 세상이라고 한다.

연기하지 않는 상태는 아비담마의 궁극 요소인 닙바-나의 작용 상태를 말하며,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상태며, 이것을 닙바-나라고 한다.

 

2023/11/06(월)

 

둑카로 가는 행을 하지 말고, 둑카의 소멸로 가는 행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아꾸살라행을 하지 말고 ‘꾸살라행을 해야 한다’는 의미며, 하고 싶어서 행하지 않고 ‘해야 하기에 행한다’는 의미며, 아담마에 따르지 말고 ‘삿담마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며, 팔사도에 따르지 말고 ‘팔정도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들이 붓다께서 ‘둑카와 둑카의 소멸만을 가르친다’고 하신 구체적 의미들이다.

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의 노예가 되면, 위와 같이 행하기가 어렵게 되어,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기가(살기가) 어렵게 된다.

 

 2023/11/07(화)

 

세간 정견으로 세상에서 행복하기 위해 세상것에 들러붙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행이 평범한(세간) 팔정도 수행(아나리야 자-나를 포함하여, 마음이 여전히 세상을 향함)이고,

출세간 정견으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것에 들러붙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행이 성스런(출세간) 팔정도 수행(아리야 자-나를 포함하여, 마음이 닙바-나를 향함)이다.

불교 명상은 기본적으로(원래) (닷사네나 빠하땁바를 거친) 유학 성자들이 (바와나 빠하땁바를 통해) 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하는 것이다.

 

2023/11/08(수)

 

범부 중생들이 (세상) 대상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집중한다는 것은 거의 모두 그 대상에 들러붙는다는 말이며, 아나리야 선정 수행에서 (세상의) 한 대상에 집중한다는 것도 세간적 불탐부진불치로 라-가가 작용하며 아꾸살라물라 연기가 작용한다는 말이다. 범부 중생들은 세상 대상에 들러붙지 않을 ‘정도로  아닛짜/둑카/아낫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대상에 들러붙지 않을 정도로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을 이해하는 유학 성자들은 (세상) 대상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집중한다는 것이 반드시 대상에 들러붙는다는 말이 아니며, 일상 생활이나 아리야 선정 수행에서 (세상의) 한 대상에 집중할 때에도 출세간적 불탐부진불치로 꾸살라물라 연기가 작용하는 상태일 수 있다.

 

2023/11/09(목)

 

욕계의 범부 중생들의 세상의 모든 활동(생활)은 눈을 통해 즐기고 귀를 통해 즐기고 코를 통해 즐기고 혀를 통해 즐기고 몸접촉을 통해 즐기고 생각을 통해 즐기는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여기에 올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붓다 담마가 흡수될 수 없으므로 헛수고하는 노력을 줄이고, 자타에게 결실있는 노력으로 참으로 짧은 생을 귀중하게 쓸 필요가 있으나, 이 또한 지혜가 개발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이다. 

 

2023/11/10(금)

 

“세 가지 상카따 락카나(saṅkhata lakkhaṇa)는 괴로움의 세 가지 유형(tisso dukkhatā)에 상응하는데, 

(i)  웁빠-다(uppāda)는 상카-라 둑카따-(saṅkhāra dukkhatā)에 상응하는 상카따 락카나(saṅkhata lakkhaṇa)다. ~  (ii) 와요(vayo)는 위빠리나-마 둑카따-(vipariṇāma dukkhatā)에 상응하는 상카따 락카나(saṅkhata lakkhaṇa)다. ~  (iii) 안냐탓따(aññathatta)는 둑카 둑카따-(dukkha dukkhatā)에 상응하는 상카따 락카나(saṅkhata lakkhaṇa)다. ~ ”

둑카의 모든 세 가지 유형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를 통한 상카-라 생성이 멈출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introduction-2-the-three-chara 

 

2023/11/11(토)

 

각자는 항상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 

‘보이지 않는 악한 존재’가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또한 자신의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자신이 나쁜 ‘가띠’를 길렀기 때문이다)​.

관습법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에 대한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출처: https://puredhamma.kr/what-does-buddha-dhamma-say-a 

 

2023/11/12(일)

 

위딱까(vitakka)/ 위짜-라(vicāra) 또는 까-마(kāma) 및 아꾸살라(akusala) 생각이 제1자-나(제1선정)에서는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는다.

~

[제4자-나(제4선정)에서는] 자신의 육체적 몸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으며 오직 ‘흰 빛’만이 인식되고, 그 ‘흰 빛’만이 인식되어지게 남겨진 유일한 ‘루빠(rupa)’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5 

 

2023/11/13(월)

 

어떤 자-나(jhāna, 선정)에서도 분명히 생각할 수 있다. 두번째 자-나(제2선정) 후에는 잡념으로 떠돌며 간간히 일어나는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도 없을 것이다. 즉, 두번째 자-나 후에는 아위딱까/아위짜-라(avitakka/avicāra, 나쁜 생각이 없는) 모드에 있게 될 것이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8 

 

2023/11/14(화)

 

빤짜니-와라나(pancanīvarana, 5가지 장애)는 첫번째 아리야 자-나(제1출세간 선정)에서 또한 완전히 제거된다. ‘Mahāvedalla Sutta (MN 43)’를 포함하여 많은 숫따(sutta)들이 ‘첫번째 출세간 선정’을 위한 그러한 조건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5가지 상요-자나(samyōjana, 족쇄)나 빤짜니-와라나 (Pancanīvarana, 5가지 장애)는 어떤 세간 선정에서도 제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중립적인 대상을 아-람마나(ārammana, 명상 대상)로 삼아서는 어떤 낄레사(kilesa)(klēsha/오염원)도 제거할 수 없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8 

 

2023/11/15(수)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는 첫번째 아리아 자-나(제1출세간 선정)에 도달하기 위해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까-마 라-가는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를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억눌려지기만 한다(vikkhambana pahana).

제1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에 도달한 소따빤나는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따빤나는 까-마 로까(kāma loka)에 돌아오지 않는다(브라흐마 로까에서 아나-가-미 팔라 순간에 이르고 거기서 닙바-나를 얻는다). 따라서, 그 소따빤나는 여전히 아나-가-미(Anāgāmi)(‘na’ + ‘āgami’, 돌아오지 않음)다.

출처: https://puredhamma.quv.kr/128 

 

2023/11/16(목)

 

<아나리야 자-나와 아리야 자-나의 구별 기준>

자-나는 까-마 라-가(감각적 욕망)와 빤짜니-와라나(5가지 장애)가 (억눌려지거나 제거되어) 일어나지 않아 마음이 고요한 범천 영역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까-마 라-가와 빤짜니-와라나가 억눌려져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아나리야 자-나(세간 선정)라고 하고, 까-마 라-와 빤짜니-와라나가 제거되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아리야 자-나(출세간 선정)라고 한다. 따라서, 아리야 자-나에는 제1아리야 자-나라도 아나가미(아나함) 이상의 성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2023/11/17(금)

 

빤짜니-와라나(5가지 장애) 중의 ‘웃닷짜-꾹꿋짜’는 우닷짜와 꾹꿋짜가 결합되어 자-나에 이를 수 없는 장애를 말하며, 개별적인 ‘웃닷짜’나 ‘꾹꿋짜’와는 다르다. 즉, 성자에게 ‘웃닷짜-꾹꿋짜’는 제거되었지만 웃닷짜나 꾹꿋짜는 제거되지 않을 수가 있으며, 꾹꿋짜는 아나함 단계에서 제거되고, 웃닷짜는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티나-밋다’도 개별적인 ‘티나’나 ‘밋다’와는 다르며, ‘티나’와 ‘밋다’는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된다고 한다.    

 

2023/11/18(토)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과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르다.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어떤 곳에 집중하는 것에 관계없이 마음에서 탐진치가 없게 하는 것을 말하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한다는 것은 불선한 마음이나 선한 마음으로 단지 마음을 한 대상에 집중한다는 것을 말한다.

깨끗한 마음으로 한 곳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고, 오염된 마음으로 한 곳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선한 마음(불탐/부진/불치의 마음)으로 현재 순간을 즐기며 집중하는 경우가 있고, 불선한 마음(탐/진/치의 마음)으로 현재 순간을 즐기며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2023/11/19(일)

 

붓다 담마는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깨끗이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마음이 깨끗한 마음인지 오염된 마음인지 알아차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무엇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삼마딧티/삼마사띠/삼마와야마로 삼마상깝빠/삼마와짜/삼마깜만따/삼마아지와를 행하며 삼마사마디에 이르는 팔정도 수행이다.

평범한(세간) 팔정도는 세간 정견을 바탕으로 하고, 성스런(출세간) 팔정도는 출세간 정견을 바탕으로 한다.  

 

2023/11/20(월)

 

모든 행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행이 나쁜 것도 아니다.

탐진치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나쁘므로 하지 않아야 한다.

왜 나쁘고, 왜 하지 않아야 하는가?

미래 괴로움의 가능성을 더욱 증가시키는 나쁜 업을 짓는 행이기 때문이다.

우선  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마음으로 행해야 하고(범부 중생의 세간 팔정도), 더 나아가 출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마음으로 행해야 한다(유학성자의 출세간 팔정도). 이것이 법구경 183에서 말하는 모든 붓다의 가르침이다.

 

2023/11/21(화)

 

업과 과보의 법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세상의 선처에 태어나는 것이 유익하고 의미가 있다는 세간 정견에 따라 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평범한(세간) 팔정도다.

업과 과보의 법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세상의 아닛짜/둑카/아낫따 특성을 이해하고 세상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것이 유익하고 의미가 있다는 출세간 정견에 따라 출세간적 불탐/부진/불치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성스런(출세간) 팔정도다.

 

2023/11/22(수)

 

삶(세상)의 특성이 아닛짜/둑카/아낫따라는 것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범부중생) 일시적으로 망각하기에(유학성자), 삶(세상)이 의미있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가치있다고 여기는 아윗자-로 인해 아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나므로 세상에 재탄생하고 윤회하며 둑카를 당하게 된다. 

아꾸살라물라 연기가 전혀 일어나지 않으므로 꾸살라 깜마가 생성되는 꾸살라물라 연기도 일어나지 않는 자가 아라한이다.

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난다는 것은 아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수행이 완성된 것이 아니며, 아직 재탄생(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학성자일 뿐이다.

 

2023/11/23(목)

 

들러붙는 순간부터 둑카가 시작된다.

즐거운 느낌(소마낫사 삼팟사ㅡ자-ㅡ웨-다나-)은 위빠리나마 둑카의 시작이다.

괴로운 느낌(도마낫사 삼팟사ㅡ자-ㅡ웨-다나-)은 둑카 둑카의 시작이다.

평온한 느낌(우뻭카 삼팟사ㅡ자-ㅡ웨- 다나-)은 상카라 둑카의 시작이다.

한편, 느낌이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든 기본적 압박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3/11/24(금)

 

어떻게 현생에서 행복하게 살고 내생에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인가(세상의 행복)라고 세상에 대한 기대로 수행하는 것이 윤회가 계속되게 하는 아꾸살라물라 연기가 작용하는 세간(평범한) 수행이다.

어떻게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인가(열반의 지복)라고 세상에 대한 기대가 없이 수행하는 것이 윤회를 그치게 하는 꾸살라물라 연기가 작용하는 출세간(성스런) 수행이며, 붓다 담마는 이 출세간 수행이 가능하도록 가르치는 가르침이다.

 

2023/11/25(토)

 

붓다 담마(또는 띠삐따까)에는 많은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아무리 많이 올바르게 파악해도 출세간 정견, 특히 세상에 대한 아닛짜 특성이 파악되지 않거나 상기되지 않는 순간, (세상에 대한) 들러붙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때 특히 정신적으로 괴롭다면 그 행에는 (모하와 함께) 도사나 (아윗자와 함께) 빠띠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그때는 수행하고 있지 않으며 나쁜 업(빠빠 깜마 또는 아꾸살라 깜마)을 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으로 즐겁거나 평온하더라도 그 행에는 (모하와 함께) 로바나 (아윗자와 함께) 라가가 일어나고 있거나, 모하 또는 아윗자가 일어나고 있을 수 있지만, 이때에는 자신이 수행하지 않고 있으며 계속 그 대상에 들러붙어 나쁜 업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

 

PS)

그래서, 정신적 괴로움이 그 생 동안 발현되지 않고 정신적 즐거움이나 평온함만 발현되는 것으로 조건지어진 천신이나 범천의 경우에는 성자에 이르지 않은 이상, 붓다 담마에 따른 수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즉, 범부 중생에게는 정신적 괴로움이 붓다 담마에 따른 수행에 필수적이지만, 범부 중생은 대개 이 정신적 괴로움을 수행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계속 그 대상에 들러붙어 나쁜 업을 짓는 방향으로 행한다.

 

댓글)

본문에서 ‘범부 중생에게는 정신적 괴로움이 붓다 담마에 따른 수행에 필수적’이라고 했는데, 고행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괴로움을 겪는 것이 수행에 필요한 것으로 알고 육체적 괴로움을 야기시키는 잘못된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적 괴로움도 수행을 촉발시키는 처음에는 필요하지만 계속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적 괴로움이 계속 필요한 것이라고 하게 되면, 불선행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처음부터 어긋납니다. 

 

 2023/11/26(일)

 

이 세상 것들은 자연적으로, 즉 노력없이 더 나쁜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결코 가지 않는다. 그것이 아닛짜 특성이다.

삶을 더 좋게 만들기를 바란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기술을 발명해야 한다. 그것은 상카-라 둑카의 일부다!

Things in this world NEVER go from “worse to better” naturally, i.e., without an effort. That is the “anicca nature.” 

If we want to make life better, we have to invent new technologies by spending time and effort. That is part of the “sankhara dukkha“!

출처: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the-big-bang-may-have-never-happened/#post-46889 

 

 2023/11/27(월)

 

로바/도사/모하를 억눌려 마음을 고요히 한다는 것은 세상(괴로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동요시키는 세상의 어떤 대상을 멀리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세상의 어떤 대상에 들러붙는 것을 말하며, 여전히 아꾸살라물라 연기가 작용하는 행(또는 수행)이다. 

세상(괴로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에 들러붙는 상태(아윗자가 작용하여 아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나는 행)는 붓다 담마에 따라 행(또는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즉, 범부 중생들의 어떤 행(또는 수행)도 붓다 담마(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담마, 즉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에 따라 열반을 향한 행(또는 수행, 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나는 행 또는 수행)이 아니다. 범부 중생들은 단지 붓다 담마에 따라 열반을 향해 행(또는 수행)한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2023/11/28(화)

 

붓다께서 전하신 붓다 담마의 초점은 세간 삶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지 않았다. 대도시를 건설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일반적으로 ‘이생을 위해 더 나은 것을 만드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은 사실 ‘시간 낭비’라는 사실에 [붓다 담마는] 초점을 맞췄다. 왜냐하면 이 생은 훨씬 더 긴 여정에서 짧은 일시 체류지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s://puredhamma.kr/waking-up-by-sam-harris 

 

2023/11/29(수)

 

‘우리 모두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순수한 상태(빠밧사라 상태)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을 ‘그것만 알면(깨달으면) 된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범부 중생의 생각 과정은 항상 이미 오염된 마음과 함께 시작하기 때문에 마음 정화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범부 중생의 마음은 항상 빤쭈빠-다-낙칸다(오취온)로 시작하며 결코 빤짝칸다(오온)로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 포스트: https://puredhamma.kr/pabhassara-citta-and-sanna-vip)

 

그러므로, 삭까-야 딧티(오취온의 견해)가 우선 제거되는 수다원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 오취온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취온의 견해(삭까-야 딧티)가 제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삭까-야 딧티의 제거는 결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수행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참된 붓다 담마를 접하여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23/11/30(목)

 

재탄생 과정(윤회)(즉, 세간 정견)을 믿든 믿지 않든, 도덕적 행위는 좋은 결과(선처에 태어남을 포함)를 가져오고 부도덕한 행위는 나쁜 결과(악처에 태어남을 포함) 가져오는데, 재탄생 과정을 믿는 경우에는 믿지 않는 경우보다 도덕적 행위를 할 가능성(확률)이 높다.

그러나, 재탄생 과정(윤회)의 괴로움과 위험함(즉, 출세간 정견, 또는 세상에 대한 아닛짜/둑카/아낫따)을 믿지 않으면, 결코 윤회의 괴로움과 위험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즉, 닙바-나에 이를 수 없다). 이 출세간 정견(세상에 대한 아닛짜/둑카/아낫따)이 출세간 수행이 가능할 정도로 확립된 자가 유학 성자고, 이에 따라 출세간 수행이 완성된 자가 무학 성자(아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