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의미가 있는가?
사는 것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사는 것의 의미를 찾았다고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사는 것의 의미를 찾지 못해 스스로 죽는 사람도 있다.
사는 것의 의미를 찾아 시골 생활, 또는 전원 생활로 의미를 찾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골/전원 생활을 꿈꾸며 포장하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있다.
이런 다큐멘터리에 현혹되어 이런 삶을 사는 것을 꿈꾸고 그렇게 사는 것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참된 붓다 담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귀중한 시간을 낭비만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의미가 있는가?
사는 것은 의미가 있는가? 사는 것이 의미 없다면, 죽는 것은 의미가 있는가?
이에 대해 간단히 답하면, 삶과 죽음은 의미가 없다(즉, 삶도 의미가 없고 죽음도 의미가 없다).
삶과 죽음은 세상이며, 이 세상은 아닛짜고 들러붙으면 둑카(숨겨진 괴로움 포함)고 결국 아낫따므로 실속이 없고 결실이 없고 그러므로 의미가 없다.
그러나 참된 붓다 담마를 이해하여, 세상/세상것에 들러붙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열반을 향해 노력하거나 열반에 이른 상태는 의미가 있다.
열반은 삶과 죽음, 또는 세상과는 달리 닛짜/숙카/앗따기 때문이며, 실속이 있고 결실이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즉, 열반은 삶과 죽음이 아니고 윤회하는 것이 아니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아니기에, 아닛짜/둑카/아낫따가 아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참된 붓다 담마를 이해한다는 것은 성자에 이른다는 것이며, 의미있는 열반을 향한다는 것이다
범부 중생들은 세상/세상것에 들러붙는 것에서 벗어나는 열반을 향하지 못하므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우선 참된 붓다 담마를 이해해야 한다.
참된 붓다 담마를 이해하지 못한 범부 중생들은 마음이 세상(삶과 죽음)을 향한 상태므로 의미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세상은 의미가 없고 열반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세상/세상것에 들러붙는 상태며, 아닛짜에서 둑카/아낫따로 진행된 상태다.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참된 붓다 담마를 이해하여 유신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세상것에 들러붙지 않는 상태며, 아닛짜에서 둑카/아낫따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세상에서 살면(사는 동안) 아닛짜 특성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가 없지만, 성자들은 그 아닛짜 특성의 것에 들러붙지 않으므로 마음이 열반을 향하게 되고, 그 들러붙지 않음이 완전하게 되고(유여열반) 육체가 작동을 멈추게 되면, 무여열반으로 닛짜/숙카/앗따의 상태인 반열반에 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