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행복, 그리고 ‘개념적 나’ (개념과 실재에 대한 이해 포함)
느낌과 행복, 그리고 ‘개념적 나’ (개념과 실재에 대한 이해 포함)
아래는 5/10 ~ 5/11 한두줄 메모장(네이버 블로그 및 카페)의 글을 합쳐 전달하는 것입니다.
(4/23 ~ 4/25 한두줄 메모장에서 언급한 ‘개념과 실재’에 대한 글도 추가)
-아래-
느낌, 즉 유쾌한(즐거운) 느낌 / 불쾌한(괴로운) 느낌 / 무덤덤한(중간) 느낌도 둑카(고통)다.
사리뿟따 존자께서 말씀하신 느낌이 없는 행복이 참된 행복, 즉 열반의 행복이다.
따라서, 아라한에 이르러도 멸진정(상수멸)이나 반열반에 들지 않는 이상, 마음이 일어나고 그 마음에서는 필수적으로 느낌이 함께 하므로 둑카(고통)를 겪게 된다(느낌이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든 기본적 압박감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위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세상은 정말로 둑카다’라는 ‘둑카의 진리’를 참으로 이해하게 되며, 마음은 열반을 구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연기가 ‘아윗자-’로 시작하지 않고 ‘꾸살라 물라’로 시작하는 ‘꾸살라 물라 연기’이며, 최소한 수다원 도의 성자에게만 일어나는 연기다.
그러므로, 범부 중생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공덕행의 마음(선정 수행하는 마음을 포함)은 위 사실을 참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아꾸살라 물라 연기, 즉 ‘아윗자-’로 시작하는 일반적 12연기로 일어난다.
(‘아윗자-’의 더 강한 버전인 ‘모-하’로 시작하는 일반적 12연기는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업 씨앗을 형성하는 ‘아꾸살라 물라 연기’다.)
열반(멸진정 및 반열반)의 행복에서는 느낌도 없지만 그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는 ‘개념적 나’도 없다(개념화에 필수적인 산냐-도 없기 때문).
그러나 세상의 행복(즐거움)에서는 느낌도 있고 그 느낌에 의한 세상의 행복을 경험하는 ‘개념적 나’도 있다.
그 느낌을 경험하는 개념적 나를 실재(실체)로 착각(간주)하는 자에게는 유신견(또는 딧티 위빨라사)에 의한 ‘개념적 나’가 작용하고 있으며 에고(마나), 즉 산냐 위빨라사에 의한 ‘개념적 나’도 작용하고 있다.
수다원에 이르면 그 개념적 나를 실재(실체)로 착각(간주)하게 하는 유신견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으며,
아라한에 이르면 그 개념적 나로 인해 둑카(괴로움/고통)가 일어나게 하는 에고(마나)도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개념과 실재(실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재(빠라맛타 담마)와 개념(빤냣띠)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세상을 이루는 실재(루빠, 찟따, 쩨따시까)는 실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세상을 이루는 개념(자아 개념, 공동체 개념, 국가 개념 등)은 가상으로 형성되거나 가상으로 영원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실재나 가상으로 형성되거나 가상으로 영원한 개념에 대한 ‘기록(나마곳따)’은 세상의 정신계에 영원히 남아 있다.
열반(닙바-나)인 실재(빠라맛따 담마)는 세상이 아닌(세상과 배타적인) 실상으로 영원한 것이다.
실재(빠라맛타 담마)는 개념(빤냣띠)을 통해 드러난다.
개념에는 의사소통과 이해를 위해 실재(빠라맛타 담마)를 기술하는 개념과, 개념을 기술하는 개념이 있으며, 개념이 없이는 우리는 실재(빠라맛타 담마)를 이해/인식할 수 없다.
이 개념/개념화는 ‘산냐-’라는 실재의 기능/작용/특성이며, ‘산냐-’를 통해 견해가 확립된다.
물론, 견해에는 열반에 이르게 하는 올바른 견해과 윤회를 계속되게 하는 그릇된 견해가 있다.
외부 대상의 특성은 그 외부 대상이 빠라맛타 담마의 특성이라고 해도 자신의 마음이 인식하는 특성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빠라맛타 담마의 특성이 아닌 대상의 ‘아름다운/추한’, ‘높은/낮은’, ‘긴/짧은’, ‘고귀한/천한’, ‘부유한/가난한’ 등의 특성은 산냐-에 의한 개념화의 특성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띨락카나에 속하는 아닛짜 산냐, 아낫따 산냐 등도 이 개념화의 특성이며, 빠라맛타 담마에 속하는 산냐에 의한 개념화가 없으면 빠라맛타 담마는 물론이고 빤냣띠도 인식 자체가 불가능하고, 붓다 담마를 배우거나 실천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열반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