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Dhamma 공부/PD 관련 포스트

2022년 2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빠띠고사 호잔 2022. 3. 14. 09:25

2022년 2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2/02/01(화)

 

<니야따 밋짜 딧티(확고하게 자리잡은 그릇된 견해>

‘니야따 밋짜 딧티(niyata micca ditthi, 확고하게 자리잡은 그릇된 견해)’는 이 견해를 지니고 있으면 잘못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견해를 의미하며, 윤회의 어떤 시점에 아빠야(사악처)에 탄생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는 다음 생이나 미래 어떤 생에 아빠야(사악처)에 재탄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견해는 8 가지가 있으며, (1) 어머니, (2) 아버지, (3) 붓다, (4) 재탄생, (5) 깜마 위빠까(kamma vipaka, 업보), (6) 오빠빠띠까(opapatika) 탄생(화생, 즉, 즉각적으로 완전한 형태로 탄생), (7) 아빠야(apaya, 악처, 사악처), 및 (8) 루빠 로까(rupa loka, 색계)/아루빠 로까(arupa loka, 무색계)와 같은 것은 없다는 견해다.

출처: https://blog.naver.com/hojanyun/221810057825 에서 편집

 

2022/02/02(수)

 

요점은 우리 마음은 우리가 갈망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에 기초하여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성스런 진리(제1성제)와 틸락카나(Tilakkhana)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관계다. 그것이 바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첫 번째 단계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인 이유다.

출처: ‘KDC-07-02_성스런 진리,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ㅡ 핵심 관계’ 포스트에서 편집

 

2022/02/03(목)

 

‘행의 마음(자와나 찟따)’으로 끼리야 찟따만 일어나는 아라한(무학 성자)과, ‘행의 마음(자와나 찟따)’으로 아꾸살라 찟따 또는 꾸살라 찟따가 일어나는 범부 중생 또는 유학 성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라한은 세상/세상것을 갈망하거나 좋아하여 행하지 않고, 자신의 몸(육체)을 잘 쓸 수 있을 때까지 몸의 작동 유지에 필요하고 다른 중생들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며 살고 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범부 중생과 유학 성자는 그 질과 양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세상/세상것을 갈망하거나 좋아하여 행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2022/02/04(금)

 

<세상을 향하는 꾸살라 찟따와 열반을 향하는 꾸살라 찟따> 

‘행의 마음(자와나 찟따)’으로 아꾸살라 찟따 또는 꾸살라 찟따가 일어나는 범부 중생과 유학 성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범부 중생은 세상을 향하는 꾸살라 찟따(아꾸살라 물라 연기에 의한 찟따로서 뿐냐 깜마를 형성)는 일어날 수 있지만, 열반을 향하는 꾸살라 찟따(꾸살라 물라 연기에 의한 찟따로서 꾸살라 깜마를 형성)는 전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유학성자(수다원/사다함/아나함)는 열반을 향하는 꾸살라 찟따(꾸살라물라 연기에 의한 찟따로서 꾸살라 깜마를 형성)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22/02/05(토)

 

<열반을 향한다는 것과 열반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의 차이>

‘마음이 열반을 향한다’는 말(2022/02/04 한두줄 메모장)과 ‘마음이 열반을 대상(아람마나)으로 한다’는 말은 다르다.

즉, ‘열반을 향하는 꾸살라 찟따’라는 것은 ‘열반을 향한 출세간 정견으로 수행하는 로끼야(세간) 찟따’라는 말이고, ‘열반(아람마나)을 대상으로 하는 막가 찟따 또는 팔라 찟따’라는 것은 ‘열반을 대상으로 하여 열반을 경험하는 로꿋따라(출세간) 찟따’라는 말이다.

멸진정이나 반열반에서는 찟따가 일어나지 않는 열반 상태, 즉 로꿋따라(출세간) 찟따도 일어나지 않는 열반(닙바-나) 상태며, 멸진정은 아라한으로서 제8아리야 선정까지 개발한 자만이 일시적으로 열반에 들 수 있는 상태고, 반열반은 아라한이 영구적으로 열반에 든 상태다. 

 

2022/02/07(월)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을 한다는 것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범부 중생이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을 한다는 것은 마음이 세상을 향한 꾸살라 찟따(바르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바른 행을 하여 뿐냐 깜마를 짓는 행)가 일어나거나 아꾸살라 찟따(바르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보고 있는 어리석은 행)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유학 성자가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을 한다는 것은 마음이 열반을 향한 꾸살라 찟따(바르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바른 행을 하여 꾸살라 깜마를 짓는 행)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무학 성자(아라한)가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마음이 열반을 향한 끼리야 찟따(바르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바른 행을 하지만 깜마가 되지 않는 행)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2022/02/08(화)

 

성스런 진리/틸락카나(Tilakkhana)/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가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아윗자(avijjā)로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아윗자(avijjā)는 성스런 진리/틸락카나(Tilakkhana)/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대한 무지다.

(이것은 각 성자의 이해의 정도(각 성자의 닙바나의 단계에 따른 깨달음의 정도/갈애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범부 중생은 올바른 이해를 조금도 하지 못한 자이지만, 수다원/사다함은 올바른 이해가 낮은 불완전한 단계이고, 아나함은 올바른 이해가 중간인 불완전한 단계이며, 아라한은 올바른 이해가 높은 완전한 단계다.) 

출처: ‘KDC-07-02_성스런 진리,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ㅡ 핵심 관계’ 포스트에서 편집

 

2022/02/09(수)

 

<퓨어담마를 접하고 있는 이 삶 ㅡ 세 번의 중첩된 기적>

퓨어 담마를 접하고 있는 이 삶은 기적이고, 더욱 기적이며, 더욱더 기적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기적이고,

붓다 담마가 유지/존속되는 시대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두 번째 더욱 기적이며,

붓다 담마가 유지/존속되는 시대에 인간으로 태어나 참된 붓다 담마(즉, 퓨어 담마)를 접하고 있는 것이 세 번째 더욱더 기적이다.

이 세 번의 중첩된 기적을 현재 경험하고 있는 자만이 둑카(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세상의 둑카)에서 영구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2022/02/10(목)

 

일단 우리가 상카라를 생성하기 시작하면, 상응하는 윈냐-나(viññāṇa)가 확립된다. 그 윈냐-나(viññāṇa)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이며, 단순한 의식(consciousness) 이상이다. PS(연기 사이클)에 있는 그 윈냐-나(viññāṇa)에는 자신이 갈망하는 어떤 것에 기초한 ‘내장(내재) 기대’, 즉 ‘기대된 결과’가 있다!

출처: ‘KDC-07-02_성스런 진리,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ㅡ 핵심 관계’ 포스트에서 편집

 

2022/02/11(금)

 

붓다 담마에서 권하는 선정(자-나) 수행은 범부 중생들의 ‘아나리야 선정(자-나)’이 아니라 수다원에 이른 성자가 더 높은 막가 팔라 단계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아리야 선정(자-나)’ 수행이다.

붓다 담마에서 범부 중생들에게 권하는 것은 선정(자-나) 성취가 아니라, 성자에 이르는 막가 팔라를 얻기 위한 삼마 사마디 상태다. 

 

2022/02/13(일)

 

<도과(막가 팔라) 성취에 필요한 것>

도과(막가 팔라) 성취에는 도덕적인 삶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지 도덕적인 삶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도과 성취에는 자-나(jhāna)는 필요하지 않으며, 삼마 사마디(samma samadhi)만 필요할 뿐이다.

 

2022/02/14(월)

 

<관심이 없다는 것과 갈망(원함/바람/기대)이 없다는 것>

세상의 어떤 것(정신적인 것도 포함)에 관심이 없다는 것과, 세상의 어떤 것(정신적인 것도 포함)에 갈망(원함/바람/기대)이 없다는 것은 다르다.

즉, 세상의 어떤 것에 갈망(원함/바람/기대)이 없어도, 필요성에 따라 관심을 가질 수가 있고, 필요성이 없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여기서 성자들에게 필요성은 열반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것을 말한다).

물론, 세상의 어떤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하여, 반드시 그것 또는 그 반대의 것에 갈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2022/02/15(화)

 

생각하지 말라(생각을 그쳐라)는 것이 붓다 담마가 아니라, 나쁜 생각(밋차 상깝빠)을 하지 말라는 것이 붓다 담마다.

즉, 밋차 딧티에 의한 생각을 하지 말고, 삼마 딧티에 의한 생각을 해야 하며, 우선 뿐냐 깜마를 짓는 생각을 해야 하며, 더 나아가 꾸살라 깜마를 짓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어리석은 생각은 악처로 이끌고, 생각을 그치는 수행은 무상유정천에서 단지 그 오랜 시간 동안 의미없는 상태(범부 중생으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가띠를 개선할 수 없는 상태)로 있다가 다시 악처로 가게 되는 것일 뿐이다.

 

댓글) 2022/02/16 07:44

관련 포스트 <위딱까, 위짜-라, 사위딱까, 사위짜-라, 및 아위딱까, 아위짜-라>

https://puredhamma.kr/vitakka-vicara-savi-avi 를 참조하세요. 자-나에서 위딱까와 위짜-라가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2022/02/16(수) 

 

<열역학 제2법칙과 아닛짜 특성>

열역학 제2법칙은 어떤 고립계(isolated system)의 무질서는 항상 증가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그것은 '무질서가 증가한다'는 뜻이고, 우리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생각하는 간단한 방법은 방을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항상 지저분하고 무질서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을 청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것은 상카-라 둑카(saṅkhāra dukkha)의 일부다.

출처: https://puredhamma.kr/how-does-anicca-nature-lead-to 에서 편집

 

2022/02/18(금) 

 

참된 불자는 왜 사느냐(육체 유지)고 물었을 때, 감각적 즐거움이나 선정의 즐거움을 통한 행복이 아니라 열반(숨겨진 괴로움을 포함하는 의미의 둑카가 소멸)에 이르기 위하여 산다고 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2022/02/19(토)

 

<자신을 보호한다(지킨다)는 것은>

붓다 담마에서 자신을 보호한다(지킨다)는 것은 불선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일어난 불선한 마음이 계속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선한 마음은 10가지 아꾸살라 행을 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러나, 붓다 담마를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보통 자신을 보호한다(지킨다)는 것을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지킨다)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불선한 마음으로라도 (정당방위/정의라고 권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몸(아하라자 까야/육체적 몸)을 보호하는(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비참한 악처로 태어나게 하여 자신(‘마노마야 까야/정신적 몸’을 통한 찟따에 의한 생명 흐름)을 해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을 보호하는(지키는) 것이 아니다.

 

2022/02/20(일)

 

거친 ‘아하라자 까야/까라자 까야(육체적 몸)’을 가진 인간계와 동물계에 있는 유정체는 육체적 몸의 유지를 위한 연관관계 및 먹이사슬로 인해 다른 유정체의 육체적 몸을 조금도 해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살생은 업력에 의해서만 생성/소멸되는 ‘정신적 몸/마노마야 까야’이 아니라, 업이 아닌 원인/조건의 영향도 받는 ‘육체적 몸’과 관련된 것임).

물속의 미생물을 신통력으로 보고 물을 먹지 못하고 심란해하는 (아라한에 이르지 못한) 빅쿠에게 붓다께서는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닙바나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생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으며, 물을 마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물을 마시는] 그 의도는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다.

참고 출처: https://puredhamma.kr/214 

 

2022/02/22(화)

 

아무리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많이 알고 심지어 세상에 대한 붓다 담마의 지식이 많다고 해도,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여(4비성제만 실천하여) 마음이 세상을  향하기만 하고 성자의 지위에 이르지 못하면, 박학다식한 담마스승인 뽀띨라 장로처럼 부처님(현재 세상에 계신다면)으로부터 칭찬 받기는 커녕  '골 빈 자(골통)'이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현재 참된 붓다 담마가 유지되고 있으므로, 붓다께서 현존하신다고 가정하고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것이 불자들이 ‘띠사라나_삼보를 의지처로 함’을 염하며 수행 지침으로 삼는 의미다.)

 

2022/02/23(수)

 

<붓다 담마에 따른 올바른(사성제를 이해/실천하는) 수행>

세상을 정토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도 세상에 들러붙음(땅하-)으로 행하는 노력은 결국 둑카(괴로움/고통)과 아낫따(실속없음/결실없음/난감함)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모든 행을 그 대상에 들러붙지 않고(땅하-없이) 적절하게/합리적으로 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붓다 담마에 따른 올바른 수행이다.

이것이  마음이 열반을 향하여 세상/세상것을 대상으로  사성제를 이해/실천하는 수행이다.

 

2022/02/24(목)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다음 생’은 사악처로 재생연결된다’ 것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고 현재의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간다(여기서, ‘다음 생’은 아난따리야 깜마를 지은 경우는 별도로 하고, 현 간답바의 업력이 다하고 다음 바와, 즉 다음 ‘정신적 몸/마노마야 까야’가 형성될 때를 의미).

성향으로 볼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계로 재생연결되고, 강한 미움(증오/분노)의 성향은 지옥계, 강한 탐함(탐욕)의 성향은 아귀계, 게을러 신세만 지는 더부살이(무임승차) 성향은 아수라계로 재생연결된다고 한다.

(어떤 주된 원인으로 31영역 각각에 재생연결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puredhamma.kr/sila-samadhi-panna-to-pa-si-sa 의 표 참조)

 

2022/02/25(금)

 

욕망이 드러난 전쟁(다툼)/혼란이냐? 욕망이 잠재된 평화(다툼없음)/안정이냐? 욕망이 없는 지혜의 평화/안정이냐?

문제의 해결책으로 욕망이 드러난 전쟁(다툼)/혼란을 선택/동조하는 자가 악처(사악처)로 향하는 자들이다.

문제의 해결책으로 욕망이 잠재된 평화(다툼없음)/안정을 선택/동조하는 자가 선처로 향하는 자들이다.

문제의 해결책으로 욕망이 없는 지혜의 평화/안정을 선택/동조하는 자가 열반으로 향하는 자들이다.

 

2022/02/26(토)

 

권리와 의무 및 그에 따른 책임은 자타의 갈망을 조정하려는 인위법(인위적 도덕을 포함)에서는 필요하지만, 업과 과보의 법칙에 따른 자연법에 따라 행하는 자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개념이다. 

자연법에 따른 행에서는 어떤 생명체를 죽일 권리나 보호할 의무 및 그에 따른 책임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사회/공동체의 처벌 포상과는 관계 없이 윤회 과정에서 업과 과보의 법칙에 따라 나쁜 결과 또는 좋은 결과의 씨앗을 생성하는 자신의 선택 행위이기 때문이며, 자신의 미래(장기적)를 자신이 만들어가는 자기 자신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합리적으로 권리/의무/책임을 강조하고 주장해도, 이것을 모르거나 믿지 못하고 행하는 것이 윤회 과정의 세상에서 불행(괴로움/고통)을 자초하는 무지(어리석음)의 한면이다. 

 

2022/02/28(월)

 

외부 대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외부 대상을 바꾸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탐진치가 작용하지 않는 마음으로는 외부 대상을 바꾸려고 해도 괜찮지만, 범부 중생들은 그것이 쉽지 않으며 외부 대상을 바꾸려고 할 때는 자기 합리화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며 거의 항상 탐진치가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범부 중생은 외부 대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항상 우선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