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2년 1월 한두줄 메모장 글 모음
2022/01/01(토)
<일시/불완전한 행복(즐거움)과 영구/궁극적 행복(즐거움을 초월함)의 차이>
세간의 행복과 출세간의 행복의 차이다.
탐진치로 구하는 행복과 무탐무진무치로 구하는 행복의 차이다.
아꾸살라 물라 연기로 구하는 행복과 꾸살라 물라 연기로 구하는 행복의 차이다.
조건지어진 행복과 조건지어지지 않은 행복의 차이다.
범부 중생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성자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차이다.
형성된 행복과 형성되지 않은 행복의 차이다.
태어남에 의한 행복과 태어남이 없음에 의한 행복의 차이다.ㅌ
생멸(삶과 죽음)이 계속되는 행복과 생멸이 그친 행복의 차이다.
윤회가 계속되는 행복과 윤회가 그친 행복의 차이다.
2022/01/02(일)
자신과 세상이 무엇인지 진실을 모르거나 진실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리석게 행하는 한, 일시적 즐거움을 추구하여 일시적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결국 그 괴로움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윤회이고 이 윤회에 갇힌 범부 중생들의 운명이며, 자유의지로 일시적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결국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숙명이다.
2022/01/03(월)
<4비성제와 4성제>
문제(괴로움)의 원인을 외부 대상에 두고 해결하고자 하여 일시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일반 사회(유물주의적 과학 포함) 또는 다른 종교의 4가지 성스럽지 못한 진리(4비성제, The Four Non-Noble Truths)고,
문제(괴로움)의 원인을 내부 마음에 두고 해결하고자 하여 영구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불교(붓다 담마)의 4가지 성스런 진리(4성제, The Four Noble Truths)다.
-2022-01-02 JBM, The Four Non-Noble Truths, https://youtu.be/d1dFY8ieta0 참조-
2022/01/04(화)
보아 즐기고, 들어 즐기고, 거친/미세한 육체적 몸을 가졌을 때 접촉하여(냄새, 맛, 감촉) 즐기는 것을 갈망(갈애)하여 그것에 모든 그 활동이 집중되어 있을 때, 그 행에는 즐기지 못하여 생기는 ‘괴로움의 스트레스’와 즐기는 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스트레스’가 있게 되는 것이다.
붓다 담마에서 말하는 둑카(즐기는 것도 즐기지 못하는 것도 둑카)는 바로 이것이며, 올바른 길을 따라 행하여, 둑카의 원인인 갈망(갈애)이 없어지면, 그런 괴로움과 두려움의 스트레스가 사라진 참된 행복이 찾아오며, 이것이 사성제의 간단한 요지다.
2022/01/05(수)
<빠라맛타 담마로 본 열반과 윤회(세상)>
열반은 ‘닙바-나’라는 한 가지 빠라맛따 그 자체의 특성에 의한 형성되지 않는 상태/조건지어지지 않는 상태/태어나지 않는 상태고, 윤회(세상)는 ‘찟따’와 ‘쩨따시까’와 ‘루빠’라는 세 가지 빠라맛타 그 자체의 특성에 의한 형성되는 상태/조건지어지는 상태/태어나는 상태다.
2022/01/06(목)
세상과 세상것은 아닛짜 특성이 있으므로 영구적으로는 만족될 수 없으며, 세상과 세상것을 바라고 기대하여 만족한다는 것은 아무리 긴 시간을 만족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세상과 세상것을 바라고 기대하며 불만족한 상태에 있으면서 괴로워하거나, 그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충족되어 일시적(범천의 겁 레벨의 수명 시간 포함)으로 만족한 상태로 즐거워하거나 평온해 하며 안도하고 있는 것이 붓다 담마에서 의미하는 무지(아윗자-) 상태다.
2022/01/07(금)
범부 중생(삿따, 뿌툿자나)은 세상과 영구적 행복(열반)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여 일시적 행복(아나리야 선정을 통해 범천이 누리는 행복 포함)을 추구하는 자며,
성자(뿍갈라, 아리야 뿍갈라)는 세상과 열반을 올바르게 알고 이해하여(최소한 우선 기본적으로, 닷사네나 빠하땁바가 이루어져) 참된 영구적 행복을 추구하는 자다.
2022/01/08(토)
소귀에 경읽기하는 노력이 줄면 줄수록, 자신 또는 타자의 욕망(갈망)을 충족시켜 주려는 노력이 줄면 줄수록 자신 또는 타자에게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 되는 행이 늘어날 수 있으며, 이것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정말로 얻기 어려운 기회를 가진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며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2022/01/09(일)
이기적이라는 것과 이타적이라는 것과 상호이익적이라는 것을 범부 중생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성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보고 그에 따라 생활할 필요가 있다.
성자의 관점에서는, 세상/세상것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든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든 자타의 욕망을 함께 충촉시키려는 노력이든 그것은 자신 또는 타자에게 결국 해로운 것이지, 열반에 유익한 것은 아니다.
열반에 유익한 것은 자신 또는 타자에게 '땅학-카요, 위라-고, 니로도(tanhākkayo, virāgo, nirodho)'가 되게 하는 것이다.
2022/01/10(월)
빠알리 경전의 숫따 또는 다른 자료를 잘못 해석하는 것은 [불교에서] 범죄다
(It is an offense to misinterpret suttā or other material in the Pāli Canon.)
인용 출처: Pāli Canon Is Self-Contained but Requires Detailed Explanation 포스트의 #10
경전 근거: Bālavagga of Aṅguttara Nikāya 2 (AN 2.23 등)
2022/01/11(화)
세상/세상것이 조금이라도 가치/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는 한, 그 마음은 열반을 향할 수 없으며, 그 가치 또는 의미에 따라 좋아함 또는 싫어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며, 이에 따라 세상/세상것에 들러붙는 갈애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세상/세상것의 아닛짜 특성을 참으로 이해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들러붙는 갈애로 인해 둑카와 아낫따 특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며, 4성제를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여 꾸살라 물라 연기가 일어날 수 없으며, 4비성제에 머물러 아꾸살라 물라 연기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어 윤회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4비성제에 대해서는 https://youtu.be/d1dFY8ieta0 참조)
2022/01/12(수)
윤회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윤회(세상) 속에서 4비성제를 통해 행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가 범부 중생이고, 세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그 이론적 바탕으로 윤회가 없다(또는 세상도 없다)는 등의 세간 사견을 가지기도 한다(4비성제에 대해서는 https://youtu.be/d1dFY8ieta0 참조).
그러나 성자는 세간 정견이 확립된 상태로 삼특상에 대한 명확하고 올바른 이해로 출세간 정견에 이른 자로서, 4성제의 실천을 통해 윤회를 벗어날 수 있거나 윤회에서 벗어난 자다.
2022/01/13(목)
<4비성제를 실천하는 자와 4성제를 실천하는 자>
세간 (10가지) 사견이 지배하는 자(4비성제를 실천하는 범부 중생)는 윤회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아예 없고, 세간 (10가지) 정견이 확립된 자(4비성제를 실천하는 범부 중생)는 윤회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세간 정견과 함께 출세간 정견(삼특상에 대한 명확하고 올바른 이해가 필요)이 확립된 자(사성제를 실천하는 유학 성자)는 반드시 윤회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는 자며, 세간 정견과 함께 출세간 정견이 확립되어 4성제의 실천이 완성된 자(무학 성자, 아라한과의 성자)는 윤회에서 벗어난 자다.
(4비성제와 4성제 및 그 차이에 대해서는 https://youtu.be/d1dFY8ieta0 와 https://youtu.be/KpbIwqXTunQ 참조)
2022/01/14(금)
<쓸데없는 이야기와 유익한 이야기>
상윳따니까야 S56:10의 띠랏차-나까타- 숫따(쓸데없는 이야기 경)에서 20가지 이상으로 나열된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에 의한 해결책이 세간적 해결책(4비성제)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삼특상/연기를 포함하는 사성제를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4비성제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쓸데없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에 의한 해결책이 출세간적 해결책(사성제)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즉, 삼특상/연기를 포함하는 사성제를 알고 이해하게 하는 이야기는 붓다 담마에서 유익한 이야기다.
(4비성제와 4성제 및 그 차이에 대해서는 https://youtu.be/d1dFY8ieta0 와 https://youtu.be/KpbIwqXTunQ 참조)
2022/01/15(토)
<상견 또는 유신견과 단견>
빠라맛타 담마(찟따, 쩨따시까, 루빠, 닙바-나라는 궁극 요소)를 제외한 어떤 것이 각 유정체의 영원한 개체로서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상견(sassata diṭṭhi) 또는 유신견(삭까야 딧티, Sakkāya Diṭṭhi)이며, 그런 각 유정체의 영원한 개체가 열반에 들어간다(들어가 합쳐진다)고 하는 것은 ‘아라한이 죽으면 단멸한다’고 하거나 ‘아라한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로 묻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것이며, 열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단견(단멸/절멸 견해, ucchēda diṭṭhi)은 상견(영혼/자아 견해, sassata diṭṭhi)이 있는 자에게서만 생기는 견해이며, 유신견이 제거된 수다원 이상의 성자에게는 단견이 있을 수 없다.
2022/01/16(일)
죽는 순간에 니밋따를 선택하고 거절하여 내생이 결정되는 것은 의식적인 과정이 아니라 각자가 기른 지혜의 레벨에 따른 가띠에 따라 자동적으로 선택되고 거절되는 옷타빠나 찟따에 의해 이루어진다.
- 포럼 토픽의 포스트 #36486 포스트에서 발췌 편집-
영어 원문 일부:
~ Whether it is an average human (puthujjana) or a Sotapanna or even an Arahant, it is not a conscious rejection of a nimitta.
– Whether to accept a nimitta or not happens AUTOMATICALLY at the votthapana citta in a citta vithi. The mind automatically accepts or rejects a nimitta according to the panna (or wisdom) it has cultivated. ~
2022/01/17(월)
빠라미따(바라밀)는 간단히 말하면 어떤 목표에 이르기 위해 요구되는 배경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aramita” simply means one needs to set up the background required to attain a certain goal.
- 포럼 토픽의 포스트 #36500 에서-
2022/01/18(화)
‘붓다께서 안내하는 행복’의 법문 시리즈(아마닷사나 테로님의 법문)에서 ‘디폴트(기본) 상태는 괴로움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말씀은 ‘찟따의 순간 오염 9단계와 같이, 모든 중생들(유학성자 포함)의 찟따의 기본 상태가 순수한 찟따의 행복상태이고, 가띠에 의한 갈망으로 인해 찟따가 오염된 상태(윈냐-나)가 괴로움(스트레스, vexation)을 내포한 상태’라는 것이다.
<보충설명>
위 말씀은 원래 행복한 상태(또는 원래 부처)이므로 오염(갈망)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갈망으로 노력(아꾸살라 물라 연기에 의한 노력)을 하지 않아야 하며, 갈망없는 노력(유학 성자의 꾸살라 물라 연기에 의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범부 중생은 그 꾸살라 물라 연기가 일어날 수 있는 최소한 수다원 도의 성자가 우선 되도록 세간 10가지 정견을 기본으로 한 ‘세간 팔정도’로 노력해야 하며, 유학 성자는 출세간 정견을 기본으로 한 ‘출세간 팔정도’에 의한 꾸살라 물라 연기로 노력해야 한다(아라한은 꾸살라 물라 연기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러한 노력은 불필요함)는 것을 의미한다.
2022/01/19(수)
세상/세상것은 가치/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자신이나 타자에게 재탄생 과정(윤회)를 그치게 하는 한도에서는 가치/의미가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상/세상것에서 올바르게 전해지는 붓다 담마(한마디로 요약하면, ‘삼특상과 연기를 포함하는 사성제’)와 그에 따라 행(공부와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에 이르면, 자신에게는 이것(붓다 담마)도 가치/의미가 없고 타자(중생)에게만 가치/의미가 있으며, 이것이 ‘강(윤회의 강)을 건너면 자신은 나룻배(붓다 담마)도 버리고(타자/중생을 위해 윤회의 강에 나두고) 붓다 담마(나룻배)에도 들러붙지 않는다’는 의미다.
2022/01/20(목)
외부 대상이든 내부 대상에 의한 것이라고 하든 괴로움(둑카)은 자신의 무지(아윗자-)와 갈애(땅하)에 따른 선택 때문에 결정(미시적/아비담마적으로 말하면, ‘인식과정/찟따 위티’에서 ‘옷따빠나 찟따’에 의함)되는 것이다.
괴로움을 선택하여 받는 결정이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올바른 붓다 담마를 듣고 수행하여 자신의 가띠(gati)를 도약적으로 변화(‘막가/팔라 찟따’의 성취)시키는 것이다.
2022/01/21(금)
초기에 마노 상카라로서 가띠에 따라 자동적으로 인지/판단되는 외부 대상(간답바를 제외한 자신의 육체 포함)이나 기억/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반응/대응으로 행하는 해로운 의도의 행(와찌 상카라 및 까야 상카라)이 문제다.
해로운 의도는 범부 중생의 세간의 도(길)에서 해로운(악처로 윤회하는) 의도와, 유학성자의 출세간의 도(길)에서 해로운(선처로 윤회하는) 의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022/01/23(일)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탐욕/갈망이 아니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탐욕/갈망은 결국 불행하게 된다는 사실(진실/진리)를 모르는 무지/어리석음에 있다.
다른 유정체의 무지/어리석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또는 내부, 즉 마노마야 까야의 가띠 레벨)의 무지/어리석음 때문에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냄/화냄은 탐욕/갈망의 다른 면(동전의 이면)일 뿐이며, 사람들은 성냄/화냄이 불행하게 된다는 것은 드러나는 괴로운 느낌 때문에 쉽게 이해하지만, 탐욕/갈망은 즐거운 느낌 또는 평온한 느낌으로 포장되므로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2022/01/24(월)
갈애(바람/기대)가 어떻게 괴로움으로 이어지는가?
갈애(바람/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슬픔, 근심, 비탄, 등) 및 충족시키기 위한 괴로운 노력이 있게 되고, 갈애(바람/기대)가 충족되었을 때에는 그 충족 상태가 사라지거나 가진 것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의한 스트레스 및 그 충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괴로운 노력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 How Wanting Leads to Suffering, https://youtu.be/yZor46BxiTA 법문 참조 -
2022/01/25(화)
갈애/갈망(로-바/라-가), 즉 바람/기대없이는 살아갈(행할) 수 없다고 하는 자는 붓다 담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행도 올바르게 할 수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갈애/갈망/바람/기대(로-바/라-가)를 열의(찬다)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2/01/26(수)
열의(찬다)는 거의 모든 행의 마음에 함께 하는 마음요소이며, 수행에도 반드시 필요한 마음요소다. 열의(찬다)가 없는 행의 마음은 무기력한(해태/혼침) 마음으로서(잠에 떨어지면 꿈을 꾸어도 더 이상 행의 마음이 아님), 갈애/갈망/성냄/짜증 등이 없어도 수행을 하지 않는 마음이며, 어리석음을 뿌리로 하는 무기력한 행의 마음(아꾸살라 마음에 속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022/01/27(목)
범부 중생들이 마음을 고요히 하는 선정(자-나) 수행보다 올바른 출세간 견해를 확립하여 최소한 수다원의 도(수다원 고뜨라부를 넘어선 상태)에 이르는 것이 우선인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천상계나 범천계에서 오래 머물러 있어도 범부 중생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악처의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으며, 수다원의 도 이상의 성자는 사악처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2022/01/28(금)
불자들이 하지 말아야 10가지 불선한 행(다사 아꾸살라) 중의 첫번째가 살생이다.
이 살생에 의한 업은 가장 큰 과보를 야기하는 씨앗을 심는 것이며, 이 살생에는 자신이 직접 살생하는 것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에게 살생하도록 하고, 다른 이가 살생하는 것을 돕고, 다른 이의 그러한 살생 행위를 칭찬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살생 중에서 가장 큰 과보는 사람을 죽이는 살생이다.
2022/01/29(토)
<참된 불자는 욕망 충족의 삶을 사는 자가 아니다>
참된 불자는 세상에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자가 아니며, 세상에서 인간의 생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4가지 필수품, 즉 의식주와 약을 해결하는데(반드시 소유하지 않아도 됨) 큰 문제가 없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기서, 약은 의식주 중의 식에 포함된다(즉, 먹는 것은 몸의 정상적 활동 및 유지를 위한 모든 먹는 것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간단히 의식주 해결문제라고 해도 된다.
욕망 충족의 삶은 세상/세상것을 즐기고자 하며 재미로 살고자 하며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2022/01/30(일)
<퓨어담마를 접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
퓨어담마를 접하게 하는 것은 사견을 갖지 않고 정견(세간 정견 및 출세간 정견)을 갖도록 하고자 하는 것(최소한 수다원의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밋차- 딧티(micchā ditthi, 그릇된 견해, 사견)와 관련하여, 밋차- 딧티(micchā ditthi)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 다른 이가 밋차- 딧티(micchā ditthi)를 기르도록 조장하거나(예를 들어, 재탄생 과정이 타당하지 않다고 함), 그러한 실천을 칭찬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2022/01/31(월)
<5가지 극악한 깜마(빤짜 아난따리야 깜마)>
바로 다음 탄생에서 ‘가장 낮은 4가지 영역(사악처)’에 확실하게 재탄생되게 하는 5가지 극악한 깜마(행위)가 있다. 이것들은 ‘빤짜 아난따리야 깜마(panca anantariya kamma)’라고 하며, 많은 깜마 위빠까(kamma vipaka)가 내생에 늦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즉 상사라(윤회)중에 그 결과가 먼 내생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틈(갭)이 없이 바로 다음 탄생에서 나쁜 탄생을 가져오는 5가지 행위로서, (1) 어머니를 죽임, (2) 아버지를 죽임, (3) 아라한을 죽임, (4) 부처님에게 상처를 입힘, (5) 상가(율장 상가)를 분열시킴 행위다.
출처: https://blog.naver.com/hojanyun/221810057825 에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