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담마 개념 2-2_닙바나를 달성하는 네 단계(2)
닙바나를 달성하는 네 단계(2)
원문(첨부파일)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The Four Stages in Attaining Nibbāna’ 포스트
- February 4, 2016; October 25, 2017 업데이트
(이어서)
<닙바나를 달성하는 네 단계>
1. 닙바-나(Nibbāna)의 첫째 단계는 존재의 진정한 본질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봄으로써 달성됩니다. 본다는 것은 단지 (이런 내용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 웹 사이트를 보는 것과 같이) 누군가로부터 먼저 31영역과 함께 존재의 본질, 유정체가 목적없이 떠돌며 끝없이 재탄생하는 것(삼사라_samsāra, 윤회), 재탄생하는 이유 등을 배워야 합니다.
* 이해해야 할 핵심들은 3가지 특성(삼법인), 4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그리고 성스런 8가지 길(팔정도)입니다. 붓다 외에는 아무도 이것들을 발견할 능력이 없으므로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담마를 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첫째 단계(Sōtapanna, 소-따빤나, 수다원, 예류자)에서는 부분적으로 붓다 세계관의 타당성을 이해합니다. 이것은 삼마 딧티(Sammā Ditthi, 정견, 분명히 보고 이해함에 따라 오염원을 제거한 견해)를 상당 부분 성취하는 것입니다.
* 첫째 단계에서는 존재의 ‘진정한 본질’, 즉 존재의 세 가지 특성(‘anicca, dukkha, anatta’ 포스트 참조)의 중요성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합니다.
3. 결국 31영역 세상 중 어떤 곳이라도 머무르는 것이 가치가 없고 (유익한) 결실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스스로 도덕적인 방식으로 행하게 됩니다. 마음은 자신을 ‘하위 4개 영역(사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가치가 없고 (유익한) 결실이 없다’는 결정을 합니다.
* 이 깨달음은 소-따빤나 팔라 찟따(Sōtapanna phala citta, 수다원 단계를 실현하는 마음 순간)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성취되면, 다시는 낮은 4개의 영역(사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영원히 아빠-야(apāya, 악처)의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Akusala Citta – How a Sōtapanna Avoids apāyagami Citta’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4. 이 첫째 단계에서 첫번째 진리인 둑카(dukkha,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를 깨달으며, 성스런 팔정도의 길을 진정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이 첫째 단계에서는 여전히 탐함과 성냄이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둘째 단계(Sakadāgāmi, 사까다-가-미, 사다함, 일래자)에서 그런 탐하고 성내는 마음의 강도가 더욱 약화됩니다.
*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인간계에는 태어나지 않지만 데-와 로까(dēva lōka, 욕계 천상)에는 태어나므로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 데-와 로까(dēva lōka, 욕계 천상)와,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가 나중에 태어날 수 있는 브라흐마 영역(색계)에서는 육체는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영원히 (육체적으로) 건강합니다.
5.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불환자)라는 셋째 단계가 달성되면, 마음은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어떤 갈망도 없습니다.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속하는 감각적 탐함과 성냄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으며, 아나-가-미 성자들에게 예약된 높은 브라흐마 영역(색계)에 단 한 번만 더 태어나게 됩니다. 아나-가-미 성자는 감각적 탐함과 성냄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영원히 행복하고 평화롭습니다.
6. 이 세 단계를 거치면서 아윗자-(avijjā, 무명)가 점차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나 그것(아윗자-)은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제거됩니다.
*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 도달하면 마음은 완전히 순수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아니닷사나 윈냐-나(anidassana viññāna) 또는 빤냐-(paññā)가 획득됩니다. 아라한 성자는 31영역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갈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라한 성자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으며, 니라-미사 숙카(nirāmisa sukha, 감각적 즐거움을 떠난 행복)의 절정인 완벽한 행복을 얻습니다.
‘Nibbāna’ 포스트와, ‘The Way to Nibbāna – Removal of asavas’ 포스트를 추가로 보세요.
<도덕적 삶만으로는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게 할 수 없는 이유>
1. 우리가 필사적으로 이 세상의 것들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이 세상 것들을 통해) 영원한 행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각적 즐거움을 간절히 원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31영역 세상에서 다른 그 무엇도 우리를 붙잡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8개 다리 모두로 먹이를 잡는 문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려고 매달립니다.
2. 상당히 많은 불자들조차 마음속에서 좀 더 이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열반적 기쁨과 관련된 행복의 수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에 대해서는 ‘Three Kinds of Happiness – What is nirāmisa Sukha?’를 보세요.
* 오늘날에도 일부 스님들이 행하는 인기있는 축복(게송)은 ‘천신이나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리고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얻기를’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스님) 조차도 영구적인 행복은 닙바-나(열반)에 있다는 것이나 다음 출생시에도 많은 괴로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3. 그러한 생각의 위험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전 생에서도 수많은 선행과 악행을 함께 하였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업과 악업의 씨앗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sankhāra, Kamma, Kamma Beeja, Kamma Vipak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죽을 때 그 씨앗 중 어떤 것이 열매를 맺게 될지 모릅니다. 열매 맺는 것이 선업 씨앗이라면 선처에 태어나지만, 악업 씨앗이라면 악처에 태어나게 됩니다.
4. 우리가 미래에 어디로 태어날 지는 현생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만 반드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전의 생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업과 악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생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인 삶을 살더라도 적어도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다음 생에) 반드시 선처로 태어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소-따빤나는 악처(사악처)에 태어날 수 있는 그 모든 깜마(업) 씨앗이 결실을 맺을 수 없게 하는 성향의 마음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붓다께서는 또한, (현생에서) 부도덕한 삶을 살더라도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a)를 행하지 않았다면 다음 생에 반드시 나쁜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따리야 깜마는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은 극히 나쁜 악업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도덕한 삶에 의한) 나쁜 행위는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한 유정체의) 삶의 흐름에는 나쁜 씨앗뿐만 아니라 많은 좋은 씨앗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Kamma? Is Everything Determined by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따라서, 이 생의 목표로 최소한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는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닙바-나(Nibbāna)에 대한 다른 포스트로서, ‘Difference Between Giving up Valuables and Losing Interest in Worthless’ 포스트 등을 더 볼 수 있습니다.
Key Dhamma Concepts 2-2_The Four Stages in Attaining Nibbāna.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