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담마 개념 1-5_상카-라와 깜마, 윈냐-나와 깜마 삐-자(1)
상카-라와 깜마, 윈냐-나와 깜마 삐-자(1)
원문(첨부파일)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Sankhāra and Kamma, Viññāna and Kamma Beeja’ 포스트
- June 16, 2017
상카-라(sankhāra), 깜마(kamma), 윈냐-나(viññāna) 및 깜마 삐-자(kamma beeja)의 핵심 개념은 모두 우리의 정신적 몸(멘탈 바디), 즉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 또는 간답바(gandhabba)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래에서 보듯이 모두 밀접하게 상호 관련되어 있습니다.
1. ‘What is ‘San’? Meaning of Sansara (or Samsara)’ 포스트에서 본 바와 같이, 상사라(Sansara 또는 Samsara)의 의미는 우리가 31영역의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이것들에는 호흡, 걷기, 먹기 등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아라한 성자 조차도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에 들 때까지 상카-라를 행해야 합니다.
* 누구든지 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리를 들어 올리려면, 그 행위가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것 같이 보이더라도 먼저 자신의 마음에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는 어떤 일이라도 산(san)의 생각, 즉 '이 세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상카-라(sankhāra = san_축적 + kāra_행위)는 탐함, 성냄 및 미혹함으로 행함으로써 ‘구르는 과정’를 하게 될 때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됩니다. ‘Nibbāna – Is it Difficult to Understand?’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윤회 과정(재탄생 과정)은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연료를 공급합니다. 접두사인 ‘아비(abhi)’는 ‘더 강한’의 뜻입니다.
2. 깜마(kamma)는 까-야(kāya, 몸), 와찌(vaci, 말) 및 마노-(manō, 생각)를 통해 우리가 축적한 모든 행위입니다.
* 그러므로, 깜마(kamma)와 상카-라(sankhāra)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붓다께서는 ‘쩨따나 함 빅카베 깜마-암 와다미(cetana ham Bhikkhave kammām vadami)’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빅쿠들이여, 나는 깜마(업)가 의도라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의도는 쩨따시카(cetasika, 마음요소)의 형태로 결합된 상카-라(sankhāra)에 있습니다.
* 의도는 생각(찟따, citta)에 포함된 쩨따시까(cetasika, 마음요소)의 유형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탐하는 의도’가 있는 생각에는 로바(lōbha, 탐함) 마음요소가 있을 것이지만, 또한 잇사(issa, 질투) 마음요소도 있을 수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생성된 상카-라(sankhāra)의 유형이 그 생각(찟따, citta)에 있는 쩨따시까(cetasika, 마음요소)의 유형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상카-라(sankhāra)를 더 깊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어떤 찟따(citta, 생각)에는 좋은(sōbhana, 소-바나) 쩨따시까(cetasika) 또는 나쁜 (asōbhana, 아소-바나) 쩨따시까(cetasika)가 없습니다. 그런 찟따(citta, 생각)는 업의 면에서 중성인 상카-라(sankhāra)를 가진다고 말하게 됩니다. 업의 면에서 중성인 상카-라(sankhāra)는 웨다나(vedana, 느낌), 산냐(sanna, 인식), 위리야(viriya, 노력)와 같은 쩨따시까(cetasika, 마음요소) 유형만 포함합니다. 이 유형은 소-바나(sōbhana) 또는 아소-바나(asōbhana)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습니다.
* 업에 관련된 상카-라(sankhāra), 즉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되는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 또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가 되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 중 하나를 포함합니다.
* 그러므로,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를 포함하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뿐나 아비상카-라(punna abhisankhāra) 또는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를 포함하는 것은 아뿐나-비 상카-라(apunnābhisankhāra)입니다. ‘Cetasika (Mental Factor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이 팔을 휘두르는 경우, 그것은 까-야 깜마(kāya kamma)입니다. 즉, 그 행동은 신체 부위를 움직이는 것과 관련되며, 그것은 마음에 생성된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에 해당합니다.
* 이때, 당신이 컵을 잡으려고 팔을 휘저었다면 그것은 업의 면에서 중성의 행동, 즉 단순한 상카-라(sankhāra)입니다. 당신은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의도는 컵을 움켜쥐는 것이었고, 그것은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 또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를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 반면에, 누군가를 치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면, 그것은 성냄으로 행한 것이며,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인 도-사 쩨따시까(dōsa cetasika (asōbhana cetasika)가 당신의 생각(찟따, citta)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아뿐나-비 상카-라(apunnābhi sankhāra)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아뿐나 깜마(apunna kamma)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사원에서 붓다께 경배하기 위해 팔을 모으는 것은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인 삿다-(saddhā cetasika)로 행해졌고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뿐나 깜마(punna kamma)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그래서, 아비담마(Abhidhamma)를 어느 정도 아는 것은 특정 핵심적인 담마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비담마를) 배우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아비담마(Abhdhamma)는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에 드신 후에 완결되었기 때문에(‘Abhidhamma – Introduction’ 포스트를 보세요), 이러한 상세한 내용은 숫따(Sutta, 경)에는 없습니다.
* 이제 우리는 ‘산(san)'이라는 용어에 따라 쩨따시까(cetasika, 마음요소)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산(san)'은 재탄생 과정(윤회)에 우리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San”? Meaning of Sansara (or Samsara)’를 보세요.
* 우리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가 아뿐나-비 상카-라(apunnābhi sankhāra)로 ‘산(san)’을 일으켜 나쁜 영역의 세상으로 재탄생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반면에,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는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로 ‘산(san)’을 일으켜 좋은 영역의 세상으로 재탄생되게 합니다.
6. 그러나,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도 우리를 재탄생되게 한다는 이것은, 우리가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나쁜 영역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피하고 도덕성을 키우고 (특히, 건강하게 되고 빈곤하게 되지 않도록) 필요한 환경을 준비하기 위해,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 붓다께서는 많은 숫따(suttā)에서 뿐나 깜마(punna kamma), 즉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에 관여할 필요를 강조하셨습니다. 한 예로, ‘Sumana Sutta (AN 5.31)’를 보세요.
* 닙바-나(Nibbāna, 열반)는 31 세상 영역 중 어디에서나 재탄생이 실속없고 가치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달성되며, 그것을 깨닫기 위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뿐나 깜마(punna kamma), 즉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에 적극 관여함에 따라 올바른 심적 경향이 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7. 미래에 깜마 위빠까(kamma vipaka, 업의 과보)를 일으킬 수 있는 업력을 생성하는, 특별한 카테고리의 찟따(citta)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라고 불립니다. 이에 대해서는 ‘Javana of a Citta – The Root of Mental Power’ 포스트를 보세요.
* 이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서만 우리가 미래에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를 일으킬 수 있는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를 만듭니다. 이에 대해서는 ‘Sankhāra, kamma, kamma Beeja, kamma Vipaka’ 포스트를 보세요.
* 이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서만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 또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가 합체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 또는 아뿐나-비 상카-라(apunnābhi sankhāra)는 그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만 나타납니다.
* 우리의 생각(찟따)에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쩨따시까(cetasika)의 종류는 우리의 가티(gathi, 성향)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쩨따시까(cetasika)의 발생을 직접 제어할 수는 없지만(자동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의 가티(gathi, 성향)를 변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닙바-나(Nibbāna)에 이르는 열쇠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Living Dhamma - Fundamental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다른 많은 섹션의 포스트에서 언급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모두 함께 모여 일관된 그림을 만듭니다. 이것은 마치 조각그림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담마 공부에) 관심와 결단력이 있다면 그것이 모두 합쳐져서 대단히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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